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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 요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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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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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오랜 인간의 바라는 바요,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행복에 대해서는 오래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고 쓰고 있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라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다. 행복에 대하여서는 사람마다 같지 않을지 모르나 ‘행복하고 싶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행복(幸福, happiness, bliss)의 사전적 의미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하다’ 거나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를 나타내는 것이며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흔히 돈이나 부(富)가 행복의 척도로 평가되기도 하나, 그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 대표적 예로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Midas) 왕을 들 수 있다.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신에게,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신은 미다스 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크게 기뻐하며 황금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던 미다스 왕은 어느 순간 자신의 능력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원천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손대는 음식과 포도주가 황금으로 변해서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딸을 만지자 그 딸이 왕의 눈앞에서 황금상으로 변해 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으로 믿었지만, 결국에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동양에서는 행복과 직결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는 관점에서 공자의 학이(學而)편의 다음 구절로 군자가 느끼는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맹자(孟子)의 인생 3락을 행복의 조건으로 드는 경우가 있다. 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자매가 아무 탈이 없는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 : 우러러보아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보아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둘째의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 :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셋째의 즐거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3樂을 一讀이라, 책 읽고 글 쓰고 항상 배우는 선비정신을, 二色이라, 사랑하는 사람과 변함없는 애정을 나누고, 三酒라, 벗을 청해 술잔 나누며 세상과 인간사 얘기하며 가무와 풍류를 즐기는 것이라 하였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인생의 3가지 즐거움으로 첫째. "나는 그리스인이다" 둘째, "나는 남자다" 셋째, "나는 위대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를 들고 있다.
이런 성현들의 즐거움의 차원은 요즘 우리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은 편리함과 안락함을 더 추구하며, 신체의 힘들고 어려움을 거부한다. 춥고 배고프고 덥고 찌뿌둥한 것을 싫어한다. 단단한 것보다 부드러운 음식을 쓴 것보다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즐거움도 내면의 깊은 울림보다는 표면적이고 찰나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많다. 긴 호흡의 장편소설은 거부하고 짧은 랩 형식의 노래나 가십 또는 차라리 만화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연애도 오래 참고 기다리고 그리워하기 보다 더 빨리 만나기를 바라고, 편지를 써서 애태우기보다 즉각적인 문자나 화상통화를 좋아한다. 행복의 추구에서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맹자의 경우처럼 가족의 건강과 무사함이 행복의 중요한 요인이었으나 오늘은 그 사정이 같지 않다. 물질적이고 금전중시의 경향이 뚜렷하고 급하고 찰나적 경향의 짧은 호흡이 대부분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고 우선 자신을 먼저 내세우고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지향한다.
옛과 오늘의 행복론에서 어느 것이 얼마나 더 옳고 그른지를 단번에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오늘의 빠른 경쟁사회에서, 정보통신의 과도한 통신물량 속에서 진정한 나눔과 참 소통은 무엇인지, 참 행복과 참 사랑은 무엇인지를 가끔은 성찰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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