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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 헐버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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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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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인구비례 기준으로는 제일 많을 것으로 본다. 개화기 우리나라에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 와 선교는 물론 교육, 의료, 사회복지 등에 큰 역할을 하였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1858 ~1902)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元杜尤, 1859-1916)는 우리 사회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나, 호머 베잘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26~1949.8. 5)박사는 덜 알려져 있다. 그는 감리교회 선교사로 이 땅에 와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에 교사로 근무하여 영어를 가르쳤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헐벗 또는 흘법(訖法), 할보(轄甫)이며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매우 사랑하고, 한국의 항일운동에 적극 지원하였다.
헐버트는 1863년 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번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을 2년간 다녔다.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하러 아펜젤러나 언더두드 보다(1885.4.5) 한 해 늦은 1886년 7월4일에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당시 서울에는 콜레라가 창궐해 도성 안팎에서 매일 2000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
학교에서 그는 5대양 6대주 지도를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넓은 세계를 설명했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익히게 하는데 주력했고, 하루에 외워야 하는 문장을 나눠주고 암송을 마치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으며 영어로 일기를 쓰는 연습도 시켰다. 고종 황제가 이 학교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으며 경복궁에 학생들을 불러 영어시험을 치르도록 하기도 했다. 헐버트는 1888년 9월 결혼을 하려고 미국에 잠시 갔다가 신부와 함께 한국으로 곧 돌아온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과서를 한글로 집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로 1889년에 탄생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출간하며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으로 소개한다.
1891년 말 육영공원 교사 고용계약이 끝나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1893년 감리교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왔다. 헐버트는 1892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을 창간하면서 ‘한글(The Korean Alphabet)’이란 9쪽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세종대왕의 창의성, 애민정신 등을 소개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여러 국제 학술지와 미국 신문, 잡지 등에도 한글이 매우 과학적인 문자임을 알렸다. 또 아리랑 음계를 채보(採譜)하여 소개하고, 시조 ‘청산아’와 경기민요 ‘군밤타령’도 음계를 붙여 소개했다.
헐버트는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1901년 1월에는 ‘한국평론’이라는 월간지를 창간, 운영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15년간 연구하여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와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라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적을 발간한다.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참가하여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다. 한국 독립과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7월29일 헐버트는 86세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인천항에 다시 도착했다. 헐버트는 한국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인 1949년 8월5일 소천하여 영원히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란 그의 희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
헐버트 박사의 깊고 뜨거운 ‘애한(愛韓)’ 정신이 우리들에게 사라져가고 있다. 근래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오래 헐버트를 연구하여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를 출간했다. 그는 헐버트의 생애를 재조명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열정을 바쳤으며,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 이 땅에서 숨진 헐버트에 대한 존경과 최소한의 예의와 의리라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번영의 상당부분 헐버트와 같은 선교사님들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산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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