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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불장난 하지 않고 꾸는 아름다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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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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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악사의 음악 이야기를 다루는 이 아일랜드 영화 <원스>(존 카니 감독)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지만 젊은이들의 꿈과 미래에 관한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몇 년 전 개봉했다가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단관 상영을 오래 하기도 했다. 직장사역의 측면으로 본다면 직업 선택과 진로 설정에 관한 의미있는 안목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이다.

거리의 악사인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진공청소기 수리를 하는 아버지와 함께 산다.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지만, 노래하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마약에 빠진 동생이 길거리 연주를 하는 그의 기타케이스에 담긴 동전을 들고 달아나자 그 동생을 잡느라고 정신이 없다. 겨우 잡았으나 배고프다고 5유로만 달라고 사정하는 동생…. 형제 간의 신세가 참으로 딱하다. 꽤 오랫동안 사귄 여인도 런던으로 떠나 그는 너무나 외롭다. 그 실연의 상처와 외로움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그 아우성치는 듯한 애절한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 내용을 묻는 젊은 여인, 영화 속에서는 그저“그녀”인 여인이 있다. 10센트를 기타케이스에 던지고 박수를 쳐주는 그녀가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진공청소기를 수리해달라고 하여 둘은 친해졌다. 다음날 (창피하지도 않은지) 그녀는 진공청소기를 끌고 여기 저기 길거리를 다니면서 그와 친해졌는데 역시 그녀도 그처럼 외로웠다. 아버지는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관절염이 걸려 자살했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다. 피아노 가게에서 점심시간에 피아노를 빌려 연주하는 그녀, 거기 가서 둘이 처음으로 맞추는 자작곡의 화음이 예사롭지 않게 아름답다.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그의 노래의 내용이 이렇다. “가라앉는 이 배를 붙잡아줘. 우린 아직 늦지 않았어. 당신은 선택해야 해, 결정할 시간이야... 오해, 시간, 수수께끼, 아픔, 이해 못해….”

그녀는 그를 떠난 여인에 대해 궁금해 하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자작 반주를 하면 그는 노래로 답하는 낭만이 이 둘에게 있다. 점점 끌리는 두 사람, 그는 그녀를 탐하느라고 급한데 그녀는 비밀을 고백한다. 체코에 두고 온 남편이 있다고. 그녀의 집에 있는 꼬마 아이는 동생이 아니라 딸이라고. 별거 상태에 있다가 이야기도 않고 나이 든 남편을 두고 왔다고 한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끼리 동병상련이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감정에 끌렸던 것인가.

끝날 듯 말듯 하는 그들의 관계를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는 그녀에게 노래해도 답이 없었고 그녀 역시 남편에게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난 자신을 버렸어요.”라고 고백해도 싫어했다고 한다.

그가 런던에서 레코드에 취입하려는 꿈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녹음실을 빌려 레코드 취입을 하는 것을 도와준다. 거리의 악단에게 반주를 맡기고 그들은 급조된 음악으로 데모 씨디를 만들려고 한다.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웬 말도 안 되는 놈팡이들의 연주라고 생각해 시큰둥하던 뮤직 디렉터도 결국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진실함과 열정에 감동하면서 차차 진지해졌다. 허접한 카스테레오에서도 들어봐야 안다면서 새벽에 차에 사람들을 태워 음악을 들려주면서 성심껏 데모 씨디를 만들어 주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진실한 열정은 이렇게 어디서나 통한다! 이제 런던으로 가는 것만 남았다. 그녀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그의 제안에 그녀는 망설인다. 어머니도 있고 딸도 있고….

이 영화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그 때, 한 때를(Once!) 참 아름다웠다고 추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엉뚱한 ‘불장난’을 저지르지 않고 음악이라는 미래를 함께 나누는 두 사람의 낭만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결국은 가족의 사랑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만나자고 하는 그에게 불장난밖에 더하겠느냐면서 거절하며 피하는 그녀는 체코에서 남편이 온다는 말에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남편이 차에 피아노를 사서 실어가지고 왔다. 그 피아노 앞에 앉아 창밖을 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외로움이 묻어있지만 그렇게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삶에서 음악을 살려낼 수 있었다. 음악에 무관심하다던 남편의 도움으로.

그도 역시 런던으로 떠난 연인에게 통화를 해서 만나기로 했고 이제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으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없이도 오래 지내지 않았니? 널 위해 모아둔 돈이 있다. 가지고 가라. 내일 떠나니? 가라. 가서 네 꿈을 펼쳐라.”

그렇게 두 사람은 깊은 절망과, 싸움, 괴로움, 가라앉는 배에서 살아날 길을 찾아낸 것이다. 불장난을 하지 않아, 가정과 가족과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꿈에 진력할 때 그것이 가능했다. 한때의 불장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미래를 향한 꿈이라고 이 영화는 말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추억이고 길이 남을 인생의 여운이 아닌가. 미래를 향한 꿈을 가지고 있다면서 ‘불장난’을 서슴치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게 꿈꾸는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이 꾸게 하신 멋진 꿈을 제대로 꾸기 위해서는 삶에서 성실하고 진지하고 숙고해야 함을 이 영화는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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