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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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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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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나왔고 1920년대를 극중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는 이 오래된 영화는 사람들의 가슴 따뜻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전에 아들과 함께 책읽기 여행을 간 날 보여주니 의외로 영화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기특한 적이 있다. 10대 아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인 것을 확인했다.

대학에 간 아이들이 떠나‘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을 겪는 주부 애블린은 스포츠광인 남편과 함께 양로원에 있는 숙모님을 면회간다. 하지만 늘 숙모에게 박대를 당해 우울하다. 거기서 만난 활기찬 노부인 니니와 친해져 1920년대 미국 남부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매주 들으며 두 여인의 삶에 빠져든다. 그 노부인의 이야기이다.

어릴 적부터 말썽꾸러기였던 잇지를 잘 돌봐주고 진주조개 이야기를 들려주던 자상한 오빠의 애인이 루스였다. 그런데 날아간 루스의 모자를 잡으러 철길로 갔다가 발을 빼지 못해 잇지와 루스가 보는 앞에서 오빠가 죽었다. 충격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루스는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잇지가 예고 없이 찾아간 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 룻기를 오려서 떠나고 싶다는 암시를 담은 편지를 보낸 루스를 잇지와 집안의 남자들이 데리고 가서 데려오는데 루스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둘은 함께 살면서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전문으로 하는 휫슬스탑 카페를 열었다. 잇지를 좋아하는 경찰관 그래디가 흑인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을 사람들이 못마땅해 한다고 알려주어도 잇지는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자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불의를 그냥 보고 있지 못했다.

뜨내기 노숙자 스모키에게 튀긴 닭과 으깬 감자와 옥수수를 잔뜩 주었는데 옥수수를 철철 흘리며 먹는 모습을 잇지가 보았다. 잇지가 스모키를 데리고 나간다. 미안해하는 그에게 잇지가 위스키 병을 내민다. 알코올 중독으로 수전증이 생긴 것을 아는 것이다. 한 팔로 그 노숙자 스모키를 감싸고 잇지가 걸으며 이야기해준다. 어릴 적에 오빠가 해준 우스갯소리이다. 오리 떼가 노닐고 있던 연못이 얼어붙자 조지아로 가는 오리 떼의 발에 연못까지 붙어서 가버렸다는 것이다. 루스가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날 밤 스모키가 식당 창고 헛간에 누워 있다. 루스가 담요를 가지고 헛간 안으로 들어가 스모키의 몸을 덮어준다. 스모키가 말한다. “갓 블레스 유.”(150-152쪽).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잇지는 영화에서 말한다. 교인들은 밤새 기도만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잇지는 루스를 태운 채 화물열차레 몰래 올라 문을 열고 철길 곁에서 노숙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차 안의 음식을 던져주는 일을 한다. 나쁜 짓이고 미친 짓이지만 자기는 그렇게 살면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이다. (미국판 홍길동인 셈이다.)

루스의 남편이 아이를 데려가려 하자 (나중에 밝혀지지만) 흑인 가정부 십씨가 후라이팬으로 쳐서 죽였는데 그 사건이 미궁 속에 빠졌고 결국 루스 남편 후랭크의 차가 호수 속에서 발견되어 잇지가 재판정에 선다. 증인을 요청했는데 교회 목사님(잇지는 교회를 비난하고 놀리고 다녔다)이 증언을 했다. 잇지가 둘러댄 것은 거짓이고 사실은 그 날 밤에 교회의 부흥회가 있었고 그 때 사흘낮밤을 잇지와 바비큐를 잘 하는 흑인 하인 조지가 참석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스크로긴스 목사님의 그 말을 법정이 믿어주었고 결국 불기소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이야기는 계속되어 루스는 암에 걸린다. 잇지가 하나님께 기적을 기도했지만 루스는 기찻길에서 팔을 하나 잃은 아들 버디를 남겨두고 떠났다. 잇지가 해주는 말, 마을 앞 연못의 이야기, 오리 떼가 얼어붙은 호수를 가지고 가버렸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아마도 잇지는 경찰관 그래디와 결혼했던 것 같고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아였고 아이는 30년을 살다가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그 여인, 애블린에게 이야기를 다 해준 그 여인이 바로 잇지였다.

잇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블린은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인생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자신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회복된다. 잇지와 루스의 사랑과 우정을 이제 애블린과 잇지가 이어간다. 잇지 할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고 함께 살아가겠다고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둘의 새로운 우정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 교회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이 영화는 이야기해준다.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사람들,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결코 놓치면 안 된다. 사람들과 세상을 향한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잇지가 흑인들이나 노숙자 스모키에게 보여준 그 동정심이 결국 아름답게 전염되었다. 애매하게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부의 백인 중심적인 남성들의 횡포에 죽임 당할 위기에 처한 잇지와 흑인 조지를 구하기 위해 목사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나중에 잇지는 목사님의 바람대로 애블린과 함께 교회에 간다.

하루하루 살며 부대끼며 서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기적이다. 그 인생을 즐길 특권과 책임이 누구에게나 있다. 애블린은 잇지 할머니의 자신을 향한 관심과 마음을 깨달았고 또 남편도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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