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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의 문, 카이로 선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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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용상 기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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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구 박사 연세대학교

1943년 11월 22일, 연합국의 승리가 굳혀지고 있던 때에 카이로의 고급 주택가 메나에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모였다. 이들은 미 육군참모총장 마셜과 영국 육군 참모총장 브루크, 중국 육군참모총장 지위를 갖고 있던 스틸웰을 비롯해 각국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100명 가까운 군 장성들과 함께 카이로에 왔다. 특별히 장제스는 부인 쑹메이링(송미령)을 대동하고 이 회의에 참석했다. 스탈린을 빼고 연합국 최고의 지휘부가 모두 모인 것이다.

5박 6일간의 회담을 통해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위한 기본적인 지침, 곧 ‘카이로 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문에는 일본이 1차 세계 대전 후 불법적으로 침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과 “한국을 적절한 절차 아래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을 굳게 다짐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적절한 절차(in due course)”라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조건이 있었지만, 한국의 독립을 연합국들이 공식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묘했던 것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이 없었고 오직 한국의 독립만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추방된 재한선교사를 비롯한 미국 기독교계의 적지 않은 역할이 있었다.

카이로에 도착한 다음 날인 11월 23일 오후 8시 루즈벨트가 머물고 있던 빌라에서 루즈벨트와 장제스는 3시간 동안 별도의 만찬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루즈벨트가 먼저, 미국과 중국이 한국, 인도차이나, 태국의 장차 지위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이에 장제스는 팽호도와 만주, 대만 등 일본에 빼앗긴 중국의 영토가 되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을 독립시켜야 하고, 인도차이나가 독립을 획득하도록 두 나라가 함께 노력해야 하며, 태국도 독립된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루즈벨트는, 한국의 독립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하면서도 장제스가 ‘한국 독립’주장을 하는 것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중국이 과거에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과 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의구심에 루즈벨트는 장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만주를 가질 수 있소. 팽호도를 가질 수 있고 대만을 가질 수 있지만 한국은 가질 수 없소. 한국은 일본에서 분리해서 국제적 감독 기간을 거친 후 독립이 주어져야만 하오. 당신은 한국은 가질 수 없소” 한국독립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은 개화시대 이래 한국의 오랜 꿈이었다. 루즈벨트는 이 문제를 확실히 짚었다. 물론 루즈벨트의 이 같은 주장은 전후 세계 전략에 대한 구상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장제스와의 회담을 통해 미국은 장차 한국이 과거와 같은, 중국의 정치적 영향권에 속하지 않는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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