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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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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정

 

김홍섭 교수

 

가을에는 모두 시인이 된다. 여름의 더위와 치열한 성장에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가을의 찬바람에 잠시 멈추어 선다. 흩어진 머리도 쓸어 올리고 먼지 낀 안경도 닦아 본다.

높푸른 하늘은 우리의 시야를 저 멀리 창공으로 향하게 하고, 거기 노니는 양떼와 들판에 달리는 군마의 달음질을 망연히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바쁘고 지친 오늘과 어쩌면 충분이 나이들어 늙어가고 있는 우리의 다소 거칠어진 피부를 만지며 눈을 부비기도 한다.

가을에는 많은 시인 묵객의 노래의 시간이며 조금은 방랑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페이터의 산문을 소개한 수필가 이양하님은 가을의 정수를 호머의 시로 제시하며, 한 때 아직 청소년이던 우리들에게 깊고 무거운 주제를 국어시간에 공부하게 하기도 했다.

 

“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호머의 시구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녀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 어 뜨리려 하 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 나, 모두가 다 가지고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 하 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 이 돋아나는 것이다.“(이양하, 페이터의 산문 일부)

 

인생의 오묘한 진리와 깊고 장엄한 울림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한 시문이 더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이 땅에 필적한 만한 시가 있다면 신라 향가의 시인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의 진리를 노래한 시인은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과 같이....” 라고 읊고 있다.

가을은 그리움과 편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은, 가을 편지)라고 시인은 노래하며 외로움의 대상으로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편지를 받아 주기를 기대한다.

이해인 시인은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 순하고도 단호한 /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 톡,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이해인, 가을편지)라고 노래한다.

성경에는 가을은 주로 늦은 비를 내리는 시기로 이해된다. “ 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주 너희의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너희를 변호하여 가을비를 내리셨다. 비를 흡족하게 내려주셨으니, 옛날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내려 주셨다.”(요엘2:23)와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호 6:3)

봄비로 씨를 뿌리며 여름의 햇볕으로 성장하고 가을비의 촉촉한 해갈로 열매가 튼실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다.

 

그럼에도 가을은 노랗고 붉은 단풍으로 물들여진 산하의 화려한 변신에 우리는 찬탄하고 기뻐하고 또 아쉬워한다. 그리고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와 다시 올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미학을 깊이 새기게 된다.

“저 느티나무 잎의 / 선연한 노랑과 붉음의/큰 춤판을 보는가 //

연분홍 꽃잎보다 / 진하고 아름다운

가을 벚나무 잎들의/ 주황으로 붉어진 비바체를 듣는가//

아무도 꽃피는 것을 보지 못하듯 / 어느새 잎새들은 또 저렇게 붉게 물들어

한 생의 아름다운 별빛들을 / 땅위에 흩어 놓는가//

겸허히 내리며 쓸리며 밟히며 /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진리를

웅변으로 노래하고 있는가//

저 푸른 하늘 나르는 기러기떼 같이 / 저 검은 하늘에 노란 낙엽으로

빛나는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는가// “

(졸시,낙엽송,落葉頌, 시집『기다림이 힘이다』에서,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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