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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긍정적 인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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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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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대학장, 성령의 삶 코스 대표)

‘방언에 대한 긍정적 인정론’

 

방언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한 신학자로서 김동수 교수를 들 수 있습니다. 그 분의 해석이 방언 하는 분들에게 크게 공감이 될 것으로 보아 소개하겠습니다. 김 교수도 역시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문제는 방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13장에서 자신의 주장의 매 연결고리마다 방언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고 있으며(12:10, 29-30; 13:1, 8) 14장에서는 예언과 비교하여 방언에 대해서 상술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방언에 대해 찬반의 극렬한 논제가 되어 온 관계 구절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이에 자신의 확신 있는 해석학적 입장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30b)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고전 14:5a)라는 두 구절을 소개하면서, 바울은 위 두 언명이 상호 상충되게 보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한 저자의 한 편지에서 그것도 영적인 은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한 묶음의 교훈 속에 있는 두 구절이 같은 주제를 말하면서 그 의미에 있어서 상충된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점이죠. 그래서 오히려 고린도전서 12-14장에 반영된 바울의 방언관은 학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려했던 바는 공동체 예배 가운데서 방언이 사용될 때 적절하지 못하게 한 것에 관한 것이지, 하나님과 신비한 교제의 언어로서의 방언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힘써 논증하였습니다.

김 교수는 고린도전서 12-14장을 순전히 교정적인 성격의 글이라고 규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판단 또한 공정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바울이 교정하려고 애썼던 것은 방언이 오용되는 것에 있었지 방언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방언을 하나의 영적인 은사로 제시하고 있으며(12:10), 이 영적인 은사는 올바로 활용된다면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12:7). 또 개인적으로 이 은사가 활용되면 하나님과 기도로서 교제하는 놀라운 방편이 되고(14:2),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사용하되,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합니다(14:39).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글을 쓰면서 상대방에 대한 심판자의 태도가 아니라, 자기도 그 영적 은사를 실제로 경험하고 사용하고 있는 체험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3:1-3, 11-12; 14:18).

“나는 너희 모두가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14:5)는 구절에서 “모두”라는 말은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주석가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논제인데, 그러나 김 교수는 이 “모두”에 대해 더 이상의 복잡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는 바울이 방언을 하나님과 신비적인 교제를 나누는 은사로 정의하면서 이 은사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보면서(14:2), 그러므로 여기서 “모두”는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아야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어떤 학자들이 고린도교회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방언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보았을까요? 이에 대해 그는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방언을 공적으로 사용할 때 참여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계속 행한 것(14:6-25)과 동시다발적으로 무질서하게 사람들이 방언을 말한 것에 대한 것이었지(14:27-33), 방언 자체에 대해서 고린도교인들 내에 갈등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보았습니다.

(다음번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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