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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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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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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의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는 질서를 전제한다. 피조세계를 철저하게 질서 가운데 존재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한 질서로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창조하신 세계가 무질서와 혼동 가운데 있게 하셨다면 피조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바람과 사물, 불과 물, 태양과 달, 모든 행성과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물론 생명이 없는 것들일지라도 어떤 것 하나 질서를 동반하지 않은 것이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서와 함께, 질서 안에서, 질서와 더불어서 존재한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질서(자연 질서)를 통해서 존재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각각의 질서와 위치를 따라서 존재한다. 만일 인간이 그러한 피조물까지 일일이 챙겨야 한다면 인간 스스로가 먼저 존재하기를 포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물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존재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를 보여준다. 즉 인간의 인위적인 힘으로 사계절의 순환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피조세계는 아름답기만 하다. 누구도 계절의 변화를 위해서 조금의 힘을 보탠 사람도 없다. 오히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인간이 기뻐할 뿐이다.

숲을 들여다보면 생명체들이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길이 나있지 않은 숲의 상황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인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엉킨 채 사람이 지날 수 없을 만큼 무질서한 상황에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는 철저하게 질서 가운데 숲을 이루고 있다. 작은 것과 큰 것, 낮은 것과 높은 것, 곧게 자라는 것과 옆으로 기는 것, 아예 땅바닥을 터전으로 하는 것,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 낮은 곳을 좋아하는 것,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 것과 건조한 곳을 좋아하는 것, 햇볕을 좋아하는 것과 햇볕을 싫어하는 것 등 각각의 위치를 찾아서 그곳에 자리하면서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다.

사람이 볼 때는 무질서하고, 엉망인 것 같지만 그들만의 질서체계에서 자기 영역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숲을 형성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질서 안에 있을 때 각 생명체는 생존을 보장받는다. 때문에 그들은 철저하게 질서 안에 있기를 본능적으로 힘쓴다. 이것은 창조의 질서, 또는 자연 질서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 준 존재의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철저하게 질서 안에 있으면서 창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은 질서 안에 있으면서도 질서를 거스르거나 필요에 따라서 역으로도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생존을 위한 질서에 따른 행동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고, 또한 매우 의식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타락이 있었고, 그 타락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주신의 위치와 상태를 결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창조의 질서를 스스로 벗어나므로 인간은 아름다움과 관계의 복된 상태를 잃게 된 것이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그 질서의 상태를 회복함으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의 위치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인간은 본래 아름답고 복됨의 상태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국가의 존재도 다르지 않다. 철저한 국가적 질서 안에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헌데 인간의 어떤 이기적인 욕망이 질서를 파괴했고, 모두가 혼동 가운데서 힘들어하고 있다. 각각의 생각이 다르며 추구하는 목적도 다르다. 하지만 하나님이 국가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법과 국가의 권위를 국민의 뜻에 위탁해서 주셨다. 그렇다고 하면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모두가 최종적인 판결과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을지라도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면 질서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利害에 따라서 상대를 부정하면 자신도 부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다른 한계이기 때문에 스스로 질서를 존중함으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적 아름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다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의식이 먼저 필요하다. 미국의 엘 고어(Albert Arnold Gore Jr.)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는 1992~2000년까지 미국의 부통령이었다.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경쟁을 했다. 선거인단 개표과정에서 개표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고, 재검표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에서는 재검표를 진행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은 전체 득표에서 부시 후보를 이겼음에도 선거인단 수에서는 지는 진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검표는 시작되었고, 고어의 표가 많이 잘못 계산되었음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었다.

그때 고어의 선택은 재검표를 중단하는 것과 부시후보의 승리를 인정하는 선언이었다. 그의 선택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권위와 능력을 무너트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선언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승복이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 완전하시기에 질서에 있어서 완전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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