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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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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14.>

구제역

 

이번엔 구제역(口蹄疫)이란다. 지난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약 3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비롯한 가금류(家禽類)가 살처분되었다.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 살아있는 생명들에 대한 인간의 무책임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깨닫게 했다. 3천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됨으로써 계란이 절대 부족하게 되었고, 계란값이 급상승하면서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게 되면서 생계란을 급히 수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조류독감조차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농민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소식이 또 전해지고 있다. 당면한 정치와 경제적 상황도 어수선 한데 국민들에게는 당장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까지 더하게 하고, 농민들에게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살처분해서 묻는 일에 지치고, 매립한 후에 2차로 발생하는 피해도 적지 않으니 이래저래 시름만 더한다.

구제역이란 갈라진 발굽을 갖고 있는 동물들, 즉 소, 돼지, 염소, 양, 사슴과 같이 인간의 식생활에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는 동물에만 걸리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또한 조류독감과 마찬가지로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발생을 했다고 하면 예측할 수 없게 확산되기 때문에 많은 가축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특히 구제역은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염을 차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구제역이 발생하면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축산물, 특히 우제류(禹蹄類) 육류의 유통이 완전히 제한되며, 외국으로 수출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축산물의 유통이 제한됨으로 소비자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에는 육류수급에 심각한 어려움을 주고, 생산자들에게도 유통의 제한이나 도살의 제한, 그리고 새로운 가축의 입식도 불가능하게 됨으로 사실상 경제적인 손실 심각하게 어렵데 된다. 따라서 축산농가의 입장에서는 기업이 부도를 맞는 것과 다름이 없을 만큼 곤경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과 구제역과 같은 일급 전염병이 반복해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 전문가들과 관계당국이 규명하고 대처를 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육환경 내지는 조건에 있다. 단지 예방접종을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하기 때문에 가축들의 건강상태가 튼튼하지 못하게 되어 감염이 되는 것이다. 기초체력이라고 할지, 가축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육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상존하게 되는 것은 생산단가의 문제다. 농가의 입장에서는 생산단가가 낮아야만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것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싸게 소비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요청하는 것은 생산단가가 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답을 제공하는 것이 사육환경에 대한 제한이다. 그러니 생산자 입장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길어야 하는 당연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비록 짐승이지만 사육환경을 넓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나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요행을 바라면서 기르고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대안은 없을까? 사실 이에 대한 답이 제일 궁하다. 말하기 좋다고 그저 누구의 탓만 한다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유익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욕심을 조금만 덜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더 많이 소유하거나 먹겠다고만 하면 생산자는 생산성만 높이려고 할 것이고, 소비자는 싸야 많이 먹을 수 있으니 같은 고기일지라도 싸게 소비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따라서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조금씩만 욕심이라고 할지, 조금만 덜 벌고, 덜 먹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생산자는 조금 더 나은 사육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소비자는 조금 덜 먹지만 질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그저 생각이고, 책상에서 관념적으로 해결책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문제를 경제 원리나 사육기술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결코 근본적인 대답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경제 원리와 기술은 같은 조건에서도 더 많은 생산과 이익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육하는 가축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하면 건강한 동물의 상태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먹을거리로 사육되는 동물들인데, 그 동물들이 건강한 상태에서 사육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먹는 것들도 모두 건강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하면 동물들을 건강하게 기르겠다고 하는 생각보다는 단지 같은 조건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전제로 병에 들지 않게 하는 약품을 개발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단가는 싸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한 먹을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되어 매립되는 가축들이 주는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인데 언제까지 살처분이 답이라고 생각하며 잘못이 없는 동물들만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아갈 것인지. 그것을 목도하고 있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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