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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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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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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7.>

까치설날

 

설 전날을 까치설날이라고 하는 것은 국어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작은설을 의미하는 것인데 어린아이들의 표현이라고 한다. 게다가 까치라고 하는 새가 한국에서는 길조(吉鳥)로 인식이 돼있어서 새해 첫 날을 맞는 마음이 좋도록 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바람이 까치설이라는 표현으로 자리를 잡지 않았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또한 고문(古文)에서 작은설을 표현할 때 ‘아찬설’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찬’이란 말은 ‘작다’는 뜻인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치설’로 불렸고, ‘아치’는 그 의미보다는 ‘아치’라고 하는 말만 전해지면서 ‘아치’가 ‘까치’로 변한 것이 까치설이라는 말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까치설은 음력으로 섣달 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월 초하룻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날에 해당한다.

오늘은 작은설, 즉 까치설이다. 오늘도 옥상에 올랐다. 요즘 아침의 일상에서 새롭게 생긴 일이 옥상에 있기 때문이다. 밤새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니 옥상에서 기르는 닭들이 마실 물이 얼어서 아침이면 물통의 얼음을 녹여주어야 한다. 신체구조상 몸에 물을 충분히 축적해두지 못하는 닭이기 때문에 즉시즉시 수분공급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아침이면 다른 일 보다 닭장의 물부터 챙기고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면 옥상에 오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게다가 닭들이 마실 물을 챙기고 나면 녀석들이 낳은 알도 수거해야 한다. 별도의 보온시설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방목(半放牧)을 하는 터라 낳은 알을 바로 챙기지 않으면 얼어서 먹을 수 없게 되는 사단이 난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옥상을 돌아보는 일은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것도 일이라고 시간을 내야 하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여노라면 녀석들이 깜짝 놀란 채 긴장을 한다. 내 손에 무엇인가 들려있는 것을 보는 순간 몰려든다. 삭풍이 부는 옥상에서 바람막이라야 달랑 비닐 한 장이니 물통이 어는 것은 당연하다. 한 편 마음으로는 애처롭지만 털 달린 짐승이니 야생으로 자라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다. 하여 물이 언 것을 해결해 주는 것만이라도 녀석들이 기다리지 않게 서둘러 매일 아침 옥상에 오른다.

오늘도 녀석들의 물을 챙기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어제 날이 좀 푹해지면서 기온이 올라 쌓였던 눈이 녹았기에 옥상 바닥의 잔디상태도 둘러보고, 옥상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과 시금치도 살펴보았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늘은 어제도 확인을 했으나 시금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지난 가을에 뿌린 시금치가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았지만 시금치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 잎도 남지 않았다. 겨우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황당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루터기만 남기고 잎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접하면서 놀란 채 그 원인을 생각해야 했다. 엄동설한에 아이들이 옥상에 올라와서 장난할 일도 없고, 누군가 꽁꽁 언 채 납작 엎드려 있는 시금치를 먹어보겠다고 뜯어갈 사람도 없으니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황당한 순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어찌된 일인지 생각에 잠겼다. 범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짐작이 갔다. 눈이 덮인 겨울날 먹을 것을 찾는 날짐승들은 무엇이든 챙겨야 한다. 하지만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러던 차에 옥상에 자라고 있던 시금치가 어느 녀석의 눈엔가 띄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떼로 날아들어 섣달의 추위에 배고픔을 잠시 달래는 파티 정도는 했을 것 같다. 봄날에 시금치나물을 생각하면서 뿌린 씨앗이기에 한편 마음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겨울날 어떤 녀석들의 한 끼의 배를 채울 수 있으면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대체 어느 녀석일까? 아쉬움에 대한 미련이 범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는 것은 까치, 직바구리, 까마귀 그중 어떤 녀석일지. 어쩌면 작은 박새들일 수도 ...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어떤 녀석이라고 딱히 단정할 수가 없지 않은가. 모두 잡식성에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있을 때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그 중 어떤 녀석이 까치설날 진수성찬은 아니겠지만 시금치로 한 끼를 챙겼을지.

시금치 씨를 뿌려놓고 푸릇푸릇 자라는 것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었고,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모두의 입맛을 돋우는 나물이 될 것을 기대했는데 한 순간에 어떤 녀석들이 모두 먹어치웠다. 참담한 광경을 접하면서 원망스러움이 앞섰다. 하지만 조금 눈이 덮인 곳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날짐승이 한 끼를 채울 수 있었다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녀석들에게 적선한 셈 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까치설날 아니던가? 그 의미야 어떻든 그래도 작은설인데 녀석들도 설맞이를 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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