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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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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라는 문자는 ‘알다’ ‘깨닫다’ ‘분별하다’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인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그 하나님의 형상의 요소들 중에 ‘知’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이것을 통해서 자신이 믿는 것과 아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위치와 신분을 갖게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 있어서 ‘知’ 곧 깨닫는다는 것은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인간이 깨달아 아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믿음과 최소한 자신의 위치와 기쁨까지도 포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깨달음이나 배움을 말하면 학생이나 특별한 사람이 할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배움 즉 깨달음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장이 정지된 나무와 같이 피폐해지는 몰골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에 냉철하게 생각해본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국민 전체의 교육수준이 맨 앞에 있다. 즉 고학력사회를 형성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렇다면 학력과 비례한 삶의 내용과 질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것은 학교 다닐 때까지만 공부하고 그 후로는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공부를 계속하지 않고 있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깨달음과 배움을 위한 노력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배움에는 특별한 요령이 없다. 꾸준하게 배우는 수고를 하는 것 외에는 묘수나 지름길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깨달음과 배움은 단순한 어떤 지식, 또는 원리를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과 원리를 깨닮으로써 믿음으로 나아가며 자신은 풍요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더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분이 영원히 갖고 계신 완전한 뜻을 헤아리는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하심을 드러냄으로써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고, 그리스도인 자신에게는 주어진 은혜가 단순히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나아가서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과연 우리는 ‘깨달음’ ‘배움’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깨달음과 배움의 목표를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닐지. 교육당국의 정책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대학이 더 이상 순수학문을 하는 전당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 취직을 하기 위한 학원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만들었고, 언제나 현실론에 밀려서 순수학문을 위해서 고뇌하고 치열하게 학문의 세계를 일구어 가는 대학과 학생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또한 그것을 빙자해서 배움을 위한 과정조차도 요령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만드는 것 같다.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고뇌는 본질과 근본의 원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기독교 신앙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만물의 근원이고, 존재원리와 목적을 영원히 갖고 계신 하나님을 알도록 힘쓰는 만큼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더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기독교 신앙조차 이기적이고, 종교의 행위는 단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거나 이루기 위한 수단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기독교 신앙을 말하면서도 어떤 요행이나 묘책이나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담 이후에 인간은 타락한 신분과 속성을 갖게 됨으로써 자의적인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거나 그분이 갖고 있는 섭리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그 길에 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스스로 그 일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비로소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고, 그분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뜻을 깨닫는 과정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이웃까지도 여유롭고, 은혜롭고, 감사함으로 대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혹은 상대적인 의미에서라도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찾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행복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누릴 수 있는 것인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행만을 구하고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닌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뜻하심에 관해서 지속적으로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인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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