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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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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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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신앙의 눈

 

주말마다 서울 장안에는 촛불이 일렁인다. 일렁인다고 하기 보다는 노도(怒濤)와 같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집회를 반복하고 있다. 국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도 염려가 많다. 어쩌다 연락이 닿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다짜고짜 “괜찮은 거야?” 나는 무심한 듯 “네!” 한다. 하지만 대답과 함께 헛웃음을 짓는다. 더 이상 구체적으로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너무나 씁쓸한 마음 때문에 말을 잇기도 그렇고 해서다. 굳이 말을 잇자면 이러쿵저러쿵 우리 스스로가 아픈 소리를 해야 하니 그렇다. 게다가 알지도,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어떤 입장에선가 해야 하는 것도 그러니 그냥 헛웃음이 전부일 수밖에 ...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말한다. 우리나라가 참 많이 변했고 성숙해졌다는 말을 어떻게든 한다. 상대의 반응은 엇갈린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뭔가 정리가 됐어야 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한 마디 더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에 어느 나라가 이렇게 국민적 반응과 질서 있는 시위를 하는가? 우리 스스로의 역사에서도 이렇게 시위가 정착하게 된 것도 처음이지 않을까? 하는 자조적인 마음을 담아서 변론을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정치권에서 당리와 당략에 따른 이해타산을 하지 말고 국리(國利)를 위한 토론과 설득과 의결을 법률이 정한 원칙에 따라서 난국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 먼저이어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수십만의 군중이 모인다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다음 수순에 대한 이해타산을 앞세워 국민을 충동하게 만들어 편이 갈라지게 만드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 모름지기 국가의 지도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는 당장 자신들 앞에 있는 당리에 따른 당략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니 주말에 한 번 모이는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기까지 필요한 에너지, 그 시간 교통체증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까지를 생각한다면 분명 손해가 크다. 그렇지만 한편, 정치권이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만들어낸 난국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촛불을 들 수 있는 정치적 환경과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 마디로 참 어렵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현재의 난국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적 현실을 보면서 단지 찬반의 입장에 서서 정치적인 견해에 따른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난국의 현실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입장에 서든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견해가 되었든 찬반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것에 따른 주장도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잘 못된 것을 잘 못된 것으로 실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법률에 따라 정리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는 물론 국민이 모두 수용해야 한다.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죄하거나 배척을 한다면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임을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입장과 견해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상황의 반전이 있을 때 자신의 입장도 존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공의와 법질서에 의한 국가적인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무질서와 그것을 이용하는 또 다른 악한 세력이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항상 이해타산이 빠르다. 그리고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어간다. 국민이 그것에 이용당하거나 무지하게 되면 자신들이 바라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선은 물론 악까지도 다스리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당면한 일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이끌어 가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부끄럽고 불의한 일이기 때문에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질서와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움을 동반하지 못한다. 증오와 아픔, 고통과 무질서가 남겨질 뿐이다. 엎질러 진 일이라면 그것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지혜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고, 그 뜻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를 포함해서 국가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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