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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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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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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감사

 

김제들녘을 중심으로 호남평야가 펼쳐져있다. 들녘 한 복판을 가로지는 길을 달린다. 지평선을 향해서 달리는 버스는 만경강을 지나 모악산을 향한다. 들녘엔 나락을 거두고 남겨진 볏짚둥치가 점점이 누워있다. 쌀이 남아돌고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시름을 하면서도 거두지 않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 벼를 재배하는 농지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쌀은 남아돈단다. 그래도 쌀이 주식이니 포기할 수 없는 농사가 아니겠는가?

격세지감이다. 쌀이 절대부족해서 한 평의 땅이라도 물을 대고 벼를 심을 수 있다면 논을 만드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벼를 심기 위해서 논을 만들겠다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지 지목을 바꾸어서 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논을 소유한 사람들의 고민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당면과제였던 시대에는 한 평의 논이라도 더 만들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논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논이 있으니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짓자니 생산단가가 맞지 않아 손해를 보면서 일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당연히 농사짓는 기쁨도 없어지니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식량이 절대 부족했을 때는 쌀밥이라도 넉넉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치였다. 1년에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특별한 날, 즉 명절과 생일날 정도가 전부였으니 쌀밥에 대한 간절함은 국민적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 로망일 수밖에 없었던 때의 일이다. 아니, 이밥에 고깃국은 그만두고 매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을 통해서 쌀밥을 넉넉히 먹는 것을 지나서 먹기 싫어서 먹지 않게 되었다. 하루의 활동량보다 섭취하는 칼로리가 많아서 비만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면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간절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감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감사는 어디로 가고 여전히 무엇을 먹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왜일까? 이밥에 고깃국을 사모하던 때를 생각하면 분명히 감사함이 넘치고 감격해야 할 일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먹을 것은 넘치지만 감사한 마음은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먹을까? 즉 맛과 분위기가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당연히 기본적인 간절함은 없어졌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이 사람들을 더 풍성하게 해야 할 것이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생존을 위한 식량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감사와 기쁨은 반감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단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에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감사를 단지 조건에 의해서 느끼려고 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 때 먹을 것이 주어진다면, 그 사람의 신앙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건의 충족은 감사의 기본적인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지 조건의 충족을 통한 감사가 아니라 주어진 것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먹는 것을 통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귀한 일이 되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시대에 억을 것이 허락되었다면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치는 상황에서 먹을 것을 통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담긴 은혜를 깨닫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는 것은 그것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지 못한 결과다. 그것을 허락하신 분과의 관계가 민감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의식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신앙의식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은혜가 아닌 것이 없고, 감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감사가 동반되지 않을 것이다. 감사가 동반되지 않는 삶은 감격과 행복을 동반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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