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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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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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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8.>

기러기

 

옥상 텃밭을 살피는 중에 어디선가 기러기 소리가 들였다. 파란 가을 하늘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맑고 깊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잠시 고개를 들고 넓은 하늘을 살폈다. 가까워지는 소리만큼이나 또렷하게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역 부이자 대형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녀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하늘을 우러렀다.

어김없이 이맘때면 북녘으로부터 남하하는 기러기들을 맞는다. 녀석들이야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이동이지만 녀석들이 대열을 지어 남하하는 모습은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한다. 가깝게 들으면 시끄러운 소리긴 하지만 기러기들이 날면서 내는 소리는 잊었던 고향친구가 부르는 것 같다. 음치에다 일정한 리듬도 없지만 고향의 소리 같다. 늘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들녘에 벼가 익어서 추수할 즈음이면 북녘으로부터 남하하는 녀석들의 무리는 고향의 소리로 다가왔다. 나그네 새 이기에 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가을이 깊어가는 날 어김없이 들을 수 있었던 고향의 소리다.

늘 함께 살고 있는 소와 닭의 소리도 고향의 소리긴 하나 녀석들의 소리는 사계절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기러기 오는 소리는 꼭 가을에만 들을 수 있기에 가을날의 고향의 소리라고 하면 어떨지? 그 소리가 요즘은 매일 들려온다. 멀리 들녘으로는 나가지 못하지만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옥상을 찾는다. 올라가는 순간부터 녀석들이 언제 지나갈지 생각하면서 귀를 기울인 채 서성인다. 요즘은 하루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다. 매일 하늘을 가로질러 남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 소리가 좋다. 그 소리가 고향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좋다. 그 소리는 가을의 소리기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좋다. 그 소리는 허허로움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좋다. 그 소리가 함께하자는 소리기 때문이다. 물질이 여유롭지만 가을도, 고향도, 넉넉함도 느낄 수 없이 바쁘기만 하다. 그런데 녀석들은 함께하자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같은 지붕 아래 살아도 언제 들고 나가는지도 모르는 이웃을 이웃이라 하고 살고 있는데 녀석들은 나그네이면서도 언제든지 함께하자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녀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녀석들이 불러낸 덕분이리라.

비록 옥상에서 맞는 것이지만 녀석들이 오는 소리는 내게 행복을 더해준다. 가을이 깊은 날 며칠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지만 녀석들은 내게 가을의 진경과 진성(眞聲)을 선물해준다.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녀석들이지만 가을이 깊어가는 날 내게 가을을 경험하게 해준다. 특별한 것 아닐 수 있지만 도심에서 가을을 느끼게 하는 녀석들, 금년에도 어김없이 내게 가을을 선물한다. 결코 나를 위해서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는 녀석들 덕분에 금년에도 가을을 맛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인간이 그만 못한 것일까? 특별한 의도가 없이 지나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격을 주고, 감사한 마음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데 기회만 있으면 자신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싸우자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행여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이 가을을 느끼고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기러기들도 전해주는데 정작 사람들은 바쁘기만 하다니 주어진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어찌하겠는가. 어쩌면 하늘을 날고 있는 녀석들이 이러고 있는 인간을 향해서 참 안 됐다고 혀를 차면서 지나는지 모를 일이다. 창조이래로 하나님은 녀석들을 통해서 변함없는 은혜를 베풀건만 여전히 인간은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일까?

오늘도 남녘으로 날고 있는 기러기들과 함께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다. 녀석들이 가는 곳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녀석들과 함께 자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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