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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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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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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6.10.25.>

추(秋)

 

가을이 깊다. 가을을 표현하는 뜻글자인 한자는 秋다. 이 추자를 뜯어보면 벼화(禾)변에 불화(火)를 붙인 형태다. 이 추자의 뜻풀이는 두 가지가 전해진다. 그 중에 하나가 태양 볕에 익어서 고개 숙인 벼를 거두는 시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것은 나름 사람들의 마음에 동감을 가지게 한다.

즉 가을은 결실과 추수의 계절이라는 의미다. 며칠 전 지나는 길에 만난 광경은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들녘엔 콤바인이 바쁘게 나락을 거두고 있고, 밭에 심겨진 작물을 거두는 손길이 분주했다. 들깨를 베어다 말리고 있는 마당에서 들깨향이 진동을 한다. 길가 밭에는 고구마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면서도 싱글벙글하는 모습은 지나는 사람의 마음마저 좋게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길손에게 말을 걸어 수확의 기쁨을 나눠주었다. 일이 힘들어서 지나는 사람에게 신경도 쓰지 않지만 수확하는 일이기 때문인지 여유가 있다. 여름 내 힘들었지만 수확하는 기쁨은 모든 것을 상쇄시켜주는 모양이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여유가 있는 게다. 길손과 이야기를 나눌 만큼이나 기쁨도 큰 것이리라.

한데 요즘 우리 집에도 추수의 기쁨이 전해지고 있다. 하루 걸러서 낯익은 우편물이 온다. 누런 봉투에 담긴 책이다. 작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몇 년 혹은 몇 개월을 준비한 글들을 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해서 지인들에게 보내주는 것들이다. 글 농사를 지어서 이제는 익었으니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진 게다. 때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로부터도 귀한 책이 전해진다. 계절이 계절이라서인지 글 농사는 때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련만 많은 사람들이 이 가을에 산고의 고통과 함께 수확을 하게 되는가 보다.

작가는 농부의 마음을 닮았는지 수확하는 기쁨을 혼자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나보다. 추수한 것을 지인이나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과 같으니 말이다. 가을에 들어서 전해진 작가들의 책은 꽤 여러 권이다. 오늘도 새로운 책이 우편함에 꽂혀있는 것을 꺼내면서 제일 먼저 보낸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한다. 작가의 이름이 확인되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동안 이 책을 엮기까지 씨름했을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다.

반면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간단해졌다. 보내온 책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 그 다음 보내준 작가에게 첨부해서 보내면서 카톡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 권의 책이 내게 전달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여러 번의 손길이 닿아야만 가능했다. 그렇게 보내온 책이 지금 내 손에 들려있다. 그런데 나는 카톡으로 몇 마디 적어서 보내는 것으로 끝이다. 사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요즘 시대가 다 그렇다고 자위한다. 언제가 내가 책을 보냈을 때 어느 원로 작가 한 분이 원고지에 만년필로 감사의 마음과 받은 책을 읽고 자신이 감동을 받은 부분에 대한 소감까지 적어서 보내준 편지가 생각난다. 그 생각을 하면 카톡으로 전하는 감사한 마음은 송구하기 짝이 없다.

가을은 추수를 하는 사람도, 추수한 것을 나누어 받는 사람도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채워지는 계절이다. 교회 옥상의 작은 텃밭에서도 추수를 했다. 늙혀둔 호박을 따고 가을배추와 갓은 잘 자라고 있다. 내년 봄을 기대하면서 시금치와 마늘도 심었다. 누군가 수고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해서 인간에게 누리도록 주신 것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이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다.

한 해의 주기(cycle)가 그렇듯 ‘인간이 한 평생을 살면서 계절에 따라서 맺어야 할 열매가 있고,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맺어야 할 것이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가을을 맞는다. 비록 늦었는가 싶어도 오늘 뿌린 씨앗처럼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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