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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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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게다가 평년보다 더위가 열흘은 길었던 것 같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수은주가 연일 기록을 남기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기상청의 예보는 믿을 수 없으니 하루하루가 더위와 싸우는 형편이었다. 기록적인 더위와 함께 길었던 여름은 사람들의 행동조차 바꾸어놓았다고 한다. 야외활동보다는 시원한 카페나 도서관 등에 사람들이 몰려서 업종에 따라서는 돈도 꽤 벌은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은 사람들에게 원망과 짜증을 더하면서 지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힘들었던 여름이었다.

그렇게 더위가 물러갈 즈음 거제도에 갈 일이 생겼다. 가고 오는 길이 내게는 일이었으나 일행들은 잠깐이지만 쉼이 있었다. 안내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은 내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친 몸을 시트에 의지한 채 무심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밖에 스치는 정경은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경험하게 되는 색깔로 바뀌고 있었다. 아직은 푸른색이 지배적이지만 들녘은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창밖에 스치는 정경을 흘려보내던 내 눈이 순간 멈추는 곳이 있다. 벼를 수확하는 장면이었다. 콤바인이 분주하게 논을 오가면서 벼를 수확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벼를 베고 있는 논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벌써 벼를 베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를 달렸을까. 또 다른 논에서도 벼를 베고 있었다. 벼의 출수 시기가 연중 가장 더운 때다. 그만큼 고온다습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벼라고 하는 식물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더위에 지치고 힘이 들지만 그렇게 덥고 습도가 높은 만큼 벼에게는 좋다. 고온다습한 만큼 병충해도 많지만 어떻든 벼는 이삭을 내밀고 열매를 익혔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그 기간 동안 벼는 출수와 함께 열매를 익혔던 것이다.

조생종 벼는 출수해서 익기까지의 기간이 짧다. 조생종의 경우 추석 전에 햅쌀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익는 시간이 짧은 만큼 밥맛은 떨어진다는 흠이 있으니 인간의 바람을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봄에 모판을 만들어서 모를 내고 찌는 듯 더운 여름 동안 농부들이 보살폈던 벼가 벌써 익어서 수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확하고 있는 농부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가을 들녘에서 볼 수 있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정경이다.

얼마 동안이나 콤바인이 부지런히 오가면서 수확하고 있는 정경이 지워지지 않았다. 인간은 더위와 싸우면서 여름이 속히 지나기를 원했지만 그 더위를 통해서 벼를 익혀 수확하는 기쁨이 주어졌다. 수확하는 농부만이 아니라 지나면서 그 정경을 보는 사람들도 기쁨이 크다. 더울 때는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인데 더위를 이기면서 열심히 열매까지 익혔다. 그리고 수확하는 기쁨과 가을의 들녘을 아름답게 만들고 추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인간이 식물(食物)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론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자라게 할 수 있거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심는 일과 거름을 주고 관리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굳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인간이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식물(食物)을 위해서 열심히 자라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몫만을 생각해서 행동하고, 자기중심으로 평가한다. 자신에게 유익하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는 기준이 오늘도 감사를 잊게 한다. 여름날 동안 사람들은 자기 몸 간수하기에 급급해서 더위를 원망했다. 덥다고 탓하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탓하고, 그런가 하면 짜증난다고 탓하는 사람까지 그렇게 더위와 싸우는 동안에도 들녘의 벼들은 열심히 자랐고 열매를 익혔다.

그 덕에 추수하는 기쁨도, 지나는 객에게는 아름다운 가을의 정경을 선물했다. 가을은 여름에 감사해야 하는 계절이다. 여름 내 더위와 작열하는 태양과 싸웠지만 덕분에 가을이 넉넉하고 아름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름이 없었다면 지금 아름다운 가을은 없을 것이다. 또한 수확하는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워서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돌아보면 그 여름이 고맙지 않던가?

잠시 눈을 들어 가을을 보라. 지금 들녘엔 창조주의 은혜가 가득하니 감사할 뿐이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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