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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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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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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6.>

모든 것이 은혜인 것을

 

옥상에 계사(鷄舍)를 지은 지 한 달이나 지났다. 입양할 닭도 결정했다. 오골계 계통의 청계와 백봉이다. 하지만 정작 입양하러 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언제 입양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 채 시간만 흘렀다. 한데 한 권사님께 전화가 왔다. 당진 장날인데 마침 백봉이라는 닭이 있으니 사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그 녀석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으니 건강상태와 나이만 확인하시라고 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4개월령이라는 것이다. 그럼 구입하도록 말씀드렸다.

다음 날 권사님 내외가 백봉 세 마리를 싣고 당진에서 올라왔다. 녀석들을 사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세 마리의 닭을 상자에 담아 중닭용 사료도 한 포대 사서 싣고 당진에서 예배당 옥상까지 무사히 옮겼다. 5일장마당에서 이미 세상사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녀석들은 새로운 환경에 이내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계사에 넣자마자 먹이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충분히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이와 물통에 각각 사료와 물을 채우는 것까지 확인했다.

권사님 내외는 내게 청계는 어디서 입양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동안 접촉한 것은 강화도의 한 농가에서 입양할까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곳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어차피 당진에서 올라왔는데 입양하는 김에 청계도 사다놓고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주소를 알려드렸다. 다음날 강화까지 직접 가서 청계를 사오셨다. 당진에서 올라온 백봉 세 마리, 강화에서 건너온 청계 세 마리가 옥상 계사에 입주를 완료했다. 여섯 마리의 닭이 입주한 계사를 점검했다. 입양된 녀석들의 움직임도 확인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던 입양은 결국 권사님 내외의 수고로 가능하게 되었다.

다음날 녀석들이 먹이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지? 이런저런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옥상에 올라가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한데 백봉 한 마리와 청계 한 마리가 행동이 느렸다. 먹이활동도 시원치 않았다. 뭔가 굼뜬 느낌이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기에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구역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다시 계사를 찾았다. 그런데 굼뜨게 움직이던 청계 한 마리가 선 채로 졸고 있었다. 닭의 상태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이 움직이지 않고 낮에 조는 것이다.

걱정이 됐다. 강화도에 전화를 했다. 닭의 상태를 말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물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답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옥상에 올라갔다. 졸고 있던 청계 한 마리는 이미 뻣뻣한 상태로 죽어있었다. 입양의 기쁨을 준지 이틀 만에 녀석은 주검이 된 것이다.

옥상의 작은 공간을 통해서 우리 공동체에 주는 기쁨과 섭리하시는 은혜는 참으로 크다.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동물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섯 마리의 닭을 입양했는데 갑자기 한 마리가 죽은 것이다. 입양할 당시의 상태는 다른 녀석들과 다르지 않았는데 시름시름하더니 갑자기 죽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인은 알 수가 없다. 상자에 담긴 채 차에 실려서 오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어떻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사흘이 지나 주일이 되었다. 예배가 끝난 다음 모두 옥상에 올라가 입양한 닭을 보면서 기뻐했다.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녀석들은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먹이를 주고 관리를 하는 것 뿐 이지만 녀석들이 자라고 기쁨을 주는 것은 모두 창조의 하나님 몫이다. 인간이 무엇을 한들 그 생명을 있게 할 수 없고, 생명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체를 치우는 것, 그마저도 땅에 묻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갑자기 죽어가는 한 마리의 닭을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분명히 입양할 때 건강했고, 잘 도착해서 다른 녀석들과 함께 계사에 넣었는데 갑자기 시름시름 하더니 죽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머지 녀석들은 잘 자라고 있다. 그러나 역시 내게 깨닫게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가두어 기르기 때문에 먹이를 챙겨야 하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몫이다. 그렇지 않다면 녀석들은 자유롭게 활보하면서 먹이를 찾을 것이고, 동시에 자신이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닭을 기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냄새나고 파리가 꼬일 텐데 그걸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었다. 내심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우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청소만 해주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파리는 얼씬도 못한다. 녀석들의 민첩한 행동은 어쩌다 멋모르고 날아들었던 날아가는 파리까지 잡아먹으니 언제 보아도 파리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 녀석들에게 주신 생존본능과 능력이 인간의 기우조차 날려보낸 셈이다. 혹여 좀 수고로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이 주는 기쁨에 비하겠는가? 모든 것이 은혜이건만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 그 은혜마저 저버리려는 것이 아닐지.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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