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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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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가 많이 오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다. 몇 년 동안의 가뭄 때문에 많이 걱정했는데 한강수계에 있는 댐들마다 물이 채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게다가 비가 많이 오니 옥상 텃밭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어 저녁시간이 한결 여유롭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같은 날씨라면 매일 물을 주어야 했는데 덕분에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해결되면 다른 한 가지를 걱정을 해야 하니 말이다. 옥상의 텃밭에 물을 안 줘서 여유롭다는 생각도 순간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리니 차분한 기분이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것이 옥상에서 자라고 있는 호박이다. 꽃이 피었을 텐데 ·· 비가 계속내리니 벌들이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시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결국 여유를 부리던 호사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옥상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서야 했다. 한걸음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의 텃밭에는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호박의 꽃 상태를 살폈다. 이미 시들어가고 있어서 화분수정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늦게라도 수정을 해주지 않으면 장마철에 호박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박꽃 상태를 살폈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수꽃을 따서 암꽃에 수정을 해주기 위해서 이미 시든 암꽃잎을 펼치는 순간 벌 한마리가 뛰쳐나와 날아갔다. 우중에도 별이 꿀을 얻기 위해서 앞꽃속으로 들어갔는데 꿀에 정신이 팔려서 꽃잎이 지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얼마나 긴 시간을 꿀을 얻기 위해서 사투를 벌였는지 꽃잎이 시들어서 닫히는 사고나 나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시든 꽃잎을 여는 순간 벌을 뛰쳐나오듯 날아갔다.

어쩌면 꿀에 정신이 팔린 욕심 많은 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기에 잠시 비가 멈춘 시간을 이용해서 꿀을 얻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명을 다하는 일벌이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꿀을 모으는 것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일벌은 꿀을 모으기 위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꽃잎이 시들어 닫히는지도 모른 채 집중했던 것이다. 스스로는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시든 꽃잎을 여는 순간 녀석은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분명 자신의 벌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비가 내릴 때 벌이 비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벌들은 일단 비행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미 모아온 꿀을 날갯짓을 통해서 수분을 증발시키는 일을 한다. 벌집을 청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꿀을 모아오는 일이다. 잠시 비가 그치는 순간에도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비행을 한다. 하지만 도심의 높은 빌딩에 있는 몇 개 안되는 호박꽃을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어김없이 와있었다. 도심의 한 복판, 그것도 9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 위에 호박꽃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하기만 하다. 벌을 보았을 때 토종벌이거나 자연의 호박벌이 아니다. 양봉인데 주변 어디에 양봉하는 곳이 있는지? 어떻든 이곳까지 녀석들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거리를 비행해야 가능한 일인데 기특하고 놀랍다.

내가 꽃잎을 여는 순간 날아간 벌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참이나 벌이 날아간 허공을 바라보아야 했다. 녀석은 우기지만 비가 멈춘 틈에 꿀을 얻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갈 수 있었다. 비록 본능적인 것이지만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녀석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은 순간이지만 나를 그곳에 멈추게 했다. 미물의 곤충 한 마리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답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꿀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호박꽃을 수정시켜 호박을 자라게 한다. 녀석이 사명을 다했기에 우리는 호박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녀석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나는 오늘도 옥상의 텃밭에 오른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라도 화분수정을 시키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가 몇날며칠 계속내리는 것도 아닌데다가 우중에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벌들이 있으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인간의 짧은 생각은 언제나 걱정거리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비가 온다고 걱정, 오지 않는다고 걱정. 그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 아닐까. 그렇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벌이 그런 것처럼 비가 오는 날 일지라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비행을 하는, 그리고 꿀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인간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얻을 것만 생각하고, 자신이 노력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걱정거리도 그만큼 비례해서 많은 것이 아닐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로 인해서 다른 것들에게 주어진 혜택도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단지 책임이 아니고 사명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녀석이 날아간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참이나 생각해야 했다. 오늘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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