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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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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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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農心

 

생소한 말들이 쏟아지는 시대라지만 날씨에 대한 표현도 새롭기만 하다. 태풍은 아니고 봄날에 기압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돌풍인데, 그것이 태풍과 같단다. 정말 혼비백산할 만큼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서인가 전해지는 뉴스는 돌풍의 피해가 많다고 한다. 특별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의 피해가 크다고 전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시간 비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비의 양은 오히려 아쉽다고 할 만큼 적었다. 이번 비는 모내기를 위한 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것이기에 좀 넉넉하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개울에 물이 흐를 정도만큼이라도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결국 흐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바람은 정말 태풍급이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서면서 혼잣말처럼 ‘개울에 물이 흐르지 않아!’ 제일 먼저 아내에게 건넨 말이다. 몇 년째 개울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지 못한 나의 아쉬움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걱정이 더 생겼다. 그날 낯부터 바람이 강한 것만이 아니라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몹시 추워졌기 때문에 옥상 텃밭에 지난주에 심은 고추가 냉해를 입을까 해서다. 심은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착근도 안 됐을 것인데, 바람까지 태풍급이고 기온이 이렇게 내려가면 기온에 민감한 고추는 냉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밤새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내 마음을 옥상에 가있게 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했다.

이튿날 아침 깨자마자 내 마음은 이 옥상의 고추밭에 가있었다. 일정을 점검하고 서둘러 옥상 텃밭으로 먼저 갔다. 헐레벌떡 올라갔다. 다른 채소들보다 고추부터 살폈다. 다른 쌈채들은 냉해를 입을 만큼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할 것 같은 고추가 기온에 제일 민감하기 때문에 녀석들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눈앞에 있는 고추나무들은 태풍같은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은 채 잘 견뎌주었다. 하지만 밤새 걱정한 ‘냉해’는 피할 수 없었다. 잎과 순이 추위에 말렸다. 일부 잎은 문드러진 채 떨어져나갔다.

금년에 심은 고추는 모두 55주다. 하나하나 살폈지만 냉해를 입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잎이나 생장점이 조금씩 동상을 입고 말려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육안으로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지만 고추는 어렸을 때 냉해를 입으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우선 고추의 특성상 많은 꽃을 피우는데 그렇지 못하고, 고추의 크기나 모양이 예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뽑아내고 다시 심지 않는 한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고추밭에 한참이나 머물던 마음이 얼마나 지나서야 다른 녀석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졌다. 같은 곳에서 같은 조건을 지냈는데 유독 고추밭에서만 머물러 있는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비로소 발걸음을 쌈채가 심겨진 곳으로 옮겼다. 녀석들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없는 체질인지라 괜찮았다. 다만 키가 큰 케일이 바람에 몹시 흔들려서 뿌리가 약한 상태에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있었다. 그렇다고 고추처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괜찮을 것이다.

그날은 옥상 텃밭을 돌아보고 나서 일정을 시작했다. 한데 종일 마음이 고추에 가있었다. 냉해로 동상을 입은 고춧잎과 순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차라리 뽑아내고 다시 심을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다시 옥상에 올라가서 녀석들을 살폈다. 하지만 한 번 잎은 냉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후라도 기온이 높이 올라가서 새롭게 나오는 싹이 강하게 커주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주일 오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고추의 상태를 살펴보았지만 정상적인 수확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다시 심어야 한다는 판단을 해야 했다. 결국 다시 심기로 결정을 했다. 집사님이 모종을 구해왔다. 이미 냉해를 입은 것들을 모두 뽑아내고 새로 심었다. 아깝지만 그냥 두었다가는 고추농사를 망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다시 심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다시 심고 물을 주었다. 또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인데 하는 걱정과 함께 아쉽지만 다시 심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몇 그루 안 되는 것인지라 쉽게 판단하고 다시 심었지 만일 넓은 밭에서 냉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심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농심’(農心)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생명체를 키운 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사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비가 와도 오지 않아도, 바람이 불어도 불지 않아도, 기온이 높아도 낮아져도 사실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 하늘만 쳐다보면서 때로는 하늘을 원망한다. 달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탓을 하늘에 돌리는 것 아니겠는가.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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