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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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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4.>

동반자

 

콘서트홀의 조명이 꺼졌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무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 후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연주자가 등장했다. 그 순간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놀란 듯 짧은 탄성과 함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대의 조명을 받으면서 등장한 것은 흰색의 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와 함께 흰색의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무대 중앙에 나오기까지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러나 무대 중앙에 멈춰선 다음 연주자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주 짧게 “아 ~ !” 하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다. 연주자인 피아니스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시각장애인인 연주자가 의자에 앉아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연주자는 자신을 안내해준 개의 목줄을 자신이 앉은 의자 다리에 묶었다. 그리고 먼저 개를 끌어당겨 포옹을 한 다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뭔가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개는 피아니스트의 지시대로 의자 옆에 앉아 네 다리를 쭉 ~ 뻗은 채 엎드렸다. 개가 자리를 잡은 다음 피아니스트는 연주할 준비를 했다.

청중은 숨을 죽였다. 이윽고 지휘자가 지휘대에 올랐다.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게 소리를 뿜어냈다.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를 위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함께 이어졌다. 첼로와 바이올린에 이어 피아노의 선율이 홀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청중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여유로움, 그리고 이어서 환희로 바뀌는 모습이 역력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긴장했던 청중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개의 출연과 시각장애인의 협연이 어떻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 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인 줄 모르고 개가 무대에 등장했을 때 청중들은 놀랐다. 그 다음은 연주자가 시각장인인 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놀랐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호흡을 맞춰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긴장했다. 그런데 ‘피아노 3중주 협주곡’이 연주되면서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매료되어 놀랐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음악에 취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놀라움을 지나 감격하고 있었다. 실내가 어둡고 콘서트홀의 분위기 때문에 두리번거리면서 청중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공기를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이 그랬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긴 ‘피아노 3중주 협주곡’이라는 음악이 어려웠다. 곡을 이해한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에 만족하려고 애를 썼다. 연주가 끝나갈 무렵 지휘자, 연주자, 그리고 오케스트라 전 단원이 호흡을 맞추어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휘자의 손이 멈췄을 때 콘서트홀은 순간 적막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함성과 이어지는 청중의 박수와 환호는 감격스러웠다.

그 순간 나의 시선은 다시 안내견에 가 있었다. 사실 연주가 계속되는 내내 내 눈은 개에게 가 있었다. 단 한 번도 일어서지 않았다. 아예 바닥에 머리까지 대고 쭉 뻗은 상태로 누웠다. 딱 한 번 돌아누운 것 외에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피아니스트가 일어나서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할 때 개도 벌떡 일어났다. 피아니스트가 인사를 하고 의자에 묶었던 목줄을 풀었을 때 안내견은 비로소 움직였다. 연주자 대기실 쪽으로 나갔던 연주자가 박수가 계속되자 인사하러 콘서트홀로 다시 들어오려고 할 때도 안내견은 앞장서서 피아니스트를 인도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자로서 활동을 하는 내내, 아니 그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에 있어서 안내견은 동반자일 것이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도 안내견과 함께 가능한 것이기에 그녀에게는 더 이상 그냥 개가 아닌 것이다. 공연이 끝난 다음 콘서트홀에 불이 켜졌다. 그때서야 나는 연주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폈다. 프로그램 프로필 사진에는 피아니스트와 개가 함께 실여있었다. 안내견은 그녀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프로필 사진에 함께 실린 안내견의 표정은 의젓했다. 그리고 연주자의 표정은 행복했다.

요즘 반려견 문제가 심심치 않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행해지고 있는 아픈 소식은 콘서트홀에서 보았던 안내견의 의젓한 모습과 인간의 모습이 교차시키게 된다. 소위 ‘개 번식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개공장’의 실태가 전해질 때 인간은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마저 든다. 의젓하기만 했던 안내견의 표정을 보면 인간이 하고 있는 ‘개공장’은 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을 맡기실 때 주셨던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시각을 통해서 사용한다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이니 적어도 어떻게 먹어야 인간다움의 품위와 멋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지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종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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