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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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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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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7.>

신발을 보내며

 

며칠 전 걷는 중에 느낌이 좀 이상했다. 신발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서 종일 신경이 쓰였다. 집에 돌아와서 신경을 쓰이게 했던 신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발의 바닥이 완전히 절단 된 상태로 수리가 불가능하게 망가져있었다. 순간 불편했던 하루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하니 10년이나 신지 않았던가. 고마운 마음보다는 하루를 신경을 쓰게 했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먹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신발은 10년 동안 내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아무런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하루 나를 불편하게 했다고 신발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10년이나 신었으니 그만하면 망가질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고맙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원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다시 산다면 이 신발 같이 튼튼한 것을 사겠다고 할 만큼 내게는 편안하고, 튼튼하고, 계절이나 복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어울리는 신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신발도 그 수명이 다했으니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벗어놓았다.

다음 날 나는 무심코 그 신발을 다시 신고 나섰다. 10년간 정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하루라도 더 신겠다는 생각이 앞선 것 같다. 결국 그대로 집을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종일 어디를 가든지 내 발걸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걸을 때 마다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다시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다. 신발이 어제보다 더 망가져서 이제는 더 이상 신는 것을 불가능하게 됐다.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이어선지 아내가 신발을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새것으로 하나 사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툭 하는 말이 ‘살 거면 이 신발을 살거야!’ 10년을 신는 동안 수선을 할 일도 없었지만 참 편하게 신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습관적으로 그 신발을 신으려는 순간 망설여야 했다. 그 신발이 아니면 정장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어떤 걸 신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던 아내는 다른 신발을 꺼내주면서 이것을 신고 그것은 버리라고 했다. 아내가 꺼내준 것은 아버님이 신다가 남긴 것이었다. 구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스포츠화도 아니다. 하지만 평상복에 신기에는 괜찮을 것 같은 캐주얼화이기에 신고 집을 나섰다. 10년 동안 신었던 신발을 버리기 위해서 손에 들고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 것이다.

손에 든 신발을 다시 한 번 보면서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아파트에 마련된 신발수거함에 넣었다. 신발이 수거함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제 다시 그 신발과는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신던 신발인지라 낮선 느낌이지만 길들여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신었다. 발이 겉도는 것 같고 착용감도 왠지 신경이 쓰인다.

 

새로운 신발은 아버님이 몇 번인가 신었던 거의 새신발이지만 내 발에는 맞지 않았다. 발의 모양이나 걷는 자세가 다르니 신발도 아버님의 발모양과 걸음걸이에 맞춰졌으니 내게는 어색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낸 신발은 10년간 정이든 것이라면 새로운 신발은 아버님의 체취가 남겨진 것이기에 익숙해지는 날을 기다리면서 신으리라는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하루를 신었다. 일단 아버님의 발에 익숙하게 변형된 신발이 다시 내 발에 맞도록 되기까지는 시간과 동행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새신발이 아니니 어쩌면 그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보내는 신발은 이제 소각장으로 갈 것이니 잘 가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냥 고마웠다고 할 밖에 ···.그리고 이제는 아버님이 남기신 신발로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는데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오늘도 아버님의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이종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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