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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3. “아덴의 전도” / 행 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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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3. “아덴의 전도” / 행 17:16~34

 

바울은 베뢰아에서까지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을 피하여 베뢰아 믿음의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아덴으로 혼자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덴은 헬라의 수도였고,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시대에도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에 속한 큰 도시였습니다.

 

아덴에서의 바울

아덴은 군사적 측면, 정치적 측면, 문화적 측면에서도 로마의 중심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철학의 도시였으며, 동시에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헛된 철학은 물론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신까지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머물러 있으면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울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행17:16~21). 바울은 거짓된 우상들이 가득 찬 것과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생들이 우상 숭배를 하는 사실에 자극을 받고 의분을 가졌다는 것이고, 노여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과 장터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변론하였습니다(행17:7). 이곳에서 바울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였습니다. 바울과의 논쟁에 대한 아덴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바울을 말쟁이라 표현하였습니다(행17:8).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참 인생철학을 말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전하는 예수님을 그 중에 하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설교

바울은 아덴의 철학자들과 변론하다가 그들에게 이끌려 아덴의 종교적, 도덕적 문제를 재판하는 법정인 아레오바고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행17:19~20).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말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자 하여 바울을 끌고 갔습니다.

바울은 “종교성이 많도다.”라는 말로 아덴 사람들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지적합니다(행17:22). 바울은 그래서 바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 단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알지 못했던 신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게 하려고 했습니다(행17:23).

그러면서 바울은 우주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존재하고 있으며 섭리하심 가운데 운영되고 있다는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행17:24).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후예들로서 인류는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가 되게 하시고 각자의 생명의 연한을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정하셔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행17:25~26).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행17:27). 이 바울의 설교는 특별하고 뛰어난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아덴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받는 모든 혜택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되는 것이며, 움직이며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인본주의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 설교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습니다. 특히 우상 숭배가 심했던 아덴 사람들의 경우 우상이 먼저 제거되어야 복음이 빨리 수용되겠기에 우상 숭배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입니다.

 

아덴에서의 전도

아덴 사람들은 민감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참 하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행17:30~31). 바울은 이러한 아덴 사람들에게 귀납적으로 하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바울은 심판주 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의 허무한 종교성과 변론이 아무런 변명도 줄 수 없고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히4:13).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이 심판의 증거가 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개를 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마3:8).

바울의 설교를 듣던 아덴 사람들은 자신들의 철학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활을 조롱했습니다(행17:32~35). 결국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덴의 전도 활동을 통해 몇 명의 회심자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아덴 전도는 더욱더 복음을 지혜로 전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인간의 방법과 지식으로 전하는 복음은 성령님을 도외시하는 것이 됨으로 큰 능력과 결심을 나타내지 못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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