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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0. “바울의 빌립보 사역과 투옥” / 행 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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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0. “바울의 빌립보 사역과 투옥” / 행 16:11~25

 

바울은 자신의 일행을 향하여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면서 부르시는 환상을 그대로 믿고 그 사람이 부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 곳에 보내는 것으로 믿고 즉시로 실행에 옮기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일행이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곳이 아님에도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는 아시아에서 건너가면 당시 유럽 대륙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로서 가장 비중이 큰 ‘전술 기지’였습니다. 빌립보성은 역사적으로 정복자들의 ‘세계 정복의 꿈과 한’이 서려 있던 곳이며, 로마의 정치, 경제의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을 성령님은 주시하셨고 빌립보를 ‘유럽 선교의 전진 기지’로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

바울 일행은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나 걱정하던 중 성 문 밖으로 가서 에그나디아 강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을 만나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던 두아디라시의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란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 말씀을 듣던 중에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여셔서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던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유럽에서 첫 개종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는 장소를 찾아서 기도하려고 할 때 성령님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열기도 하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가능케 하는 유일하고도 무한한 능력의 도구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바울의 일행을 머물게 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자색 옷감’ 장사들은 상인 계급 중에 귀족계층의 사람들이었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남. 빌립보에도 신접한 여종이 있어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의 욕망을 채워 주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마귀가 사람들의 영적인 무지와 헛된 욕망을 이용해서 그들의 마음속 왕자에 군림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점을 치는 통찰력 있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빌립보의 신접한 여종과 다를 바 없는 마귀의 도구이며 종일 것입니다.

2) 복음을 대적하는 마귀의 훼방은 계속됩니다. 점치는 여종을 지배하는 마귀는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전도를 관망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는 훼방으로 전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행16:16, 18). 그녀의 행동은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마귀 정도의 능력을 지닌 또 하나의 신으로 여기려는 간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의 훼방 때문에 사역을 중단시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여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고 더 영광을 받으시는 계기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에든지’ 악한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빌4:8).

 

 

모함 받는 바울과 실라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수익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되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의 모함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으로서 우리 성에 들어와서는 편안하게 살고 있던 성을 요란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20절).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 선한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는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1) 매를 맞았습니다. 그들의 모함을 들었던 그들의 상관들은 흥분하여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벗기게 하여 태장을 맞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변명하지 않고 매를 맞았습니다. 주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아무 죄도 없이 매를 맞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바로 이러한 주님의 자세를 배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달게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벧전2:19).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우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2)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매우 때린 후에 감옥 깊은 곳에 발에 차꼬를 든든히 채우고는 가두고 든든히 지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몸을 깊은 옥에 가둘 수 있지만 그들의 믿음과 영혼까지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의지하고 믿으며 두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누구도 가둘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잡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인간 역사에 개입하도록 불러 내리는 행동입니다.

3)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의무인 동시에 특권입니다. 성도가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현실 속에서 나타나게 하는 위대한 도구입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며 한없는 사랑으로 보살피십니다. 성경은 모든 주의 성도들에게(시30:4), 모든 민족들에게(시67:3, 68:32, 148:1~14, 롬15:11) 그리고 온 땅에게(시66:4)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기쁠 때만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이든지 성도는 찬송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환란이 닥치면 닥칠수록 더해야 합니다(욥1:21).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양도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오늘도 복음의 사역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마귀의 방해와 교묘한 술책도 계속됩니다. 바울과 실라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어떤 환경에서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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