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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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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전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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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고언苦言

 

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뜬금없이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만나자고 하거나 밥 한 끼를 같이 먹자는 소리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하는 의도를 모를 일이지만 못 만날 일도 아니기에 약속을 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만났다. 아무런 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심중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

워낙 정치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나로서는 버거운 상대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불쑥 “맑은 물에는 큰 고기가 없어! 좀 흙탕물이라야 큰 고기가 있는 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 무심코 들으면서도 어떤 의도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인지 순간 머리가 아팠다. 딱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화두를 그렇게 꺼내놓고 바둑을 두는 사람처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의미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이미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의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었지만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어떤 말로 응수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급급했다.

결국 어떤 목적으로 그러한 말을 했든,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든 내게 있어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끝까지 무거운 마음을 갖게 했다. 사업을 하거나 세속정치를 하는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백번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때로는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가 후배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많이 힘들게 했다. 기독교 신앙을 단순히 인간의 목적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복적, 주술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러한 말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교회의 지도자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절대 진리로 믿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라 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절대적 가치를 두고, 그 가치를 믿음으로 따르는 것이 신앙이라는 의미이다. 비록 그것을 완성할 수 없지만 그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곧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일 때 이 땅에서 행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 뜻과 일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를 기뻐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앙은 언제나 맑은 물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노력을 하더라도 깨끗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만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조차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인간이다. 따라서 끝없이 은혜를 구하면서 신실함으로 살도록 애쓰는 것이 이 땅에서 신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매우 의도적으로 맑은 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 신앙의 도리인 것이다. 그것이 교회 지도자의 모습이다.

한데 “맑은 물에는 큰 고기가 없다!” 내게 맑은 물을 고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완전한 사람이 아닌 것은 내가 알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안다. 그럼에도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왜일까? 하나님의 교회를 이해관계나 목적에 따라서 무질서하게 만들어가자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힘든 밤이었다. 그 말을 듣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까지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말에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내게 나름 고언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렵게 말했을 것인데 정작 내게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갈등과 고민으로 밤을 새우게 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나름 내게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내게는 오히려 힘들게 하는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더 넓은 물에는 더 큰 고기가 있다!’는 것이다. 육지에서도 정말로 큰 고기는 맑은 물에 있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고기는 바다에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깨끗한 물이다. 겨우 웅덩이나 하천을 보면서 큰 고기가 맑은 물에 없다는 것은 스스로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깨달음이다. 일어나면서 깨달은 것을 통해서 용기와 확신을 얻었다. 사람의 일이나 관계에 매여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 큰 고기를 보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찾아보고 있는 것 이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 내게 그런 말을 하고자 일부러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맑은 물에서 더 큰 고기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은 오히려 더 맑고 큰 것을 바랄 수 있도록 했다.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된 것은 큰 고기를 잡겠다고 흙탕물에 가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말이다. 좁은 길로 행하라는 말씀이 더욱 크게 들려진다. 정말 큰 고기는 더 맑은 물에 있다는 사실이 확신을 갖게 한다.

 

이종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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