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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세상ㅣ섭리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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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전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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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쌈채들을 심었다. 그런데 봄날 동안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주었던 쌈채들이 꽃대를 길게 올렸다. 이제 상추도 사명(?)을 다한 것이다. 더 이상 쌈으로 옆채를 공급할 수 없고 종족번식을 위해서 꽃을 피워야하기에 잎 대신에 꽃대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니 이제는 뽑아내고 다른 것을 심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한 여름, 초복까지 겹친 날이라서인지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잠깐의 땀흘림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큰 것을 알기에 일을 시작했다. 꽃대를 올린 상추와 쌈채 몇 가지를 뽑아내는 일부터 했다. 유난히 가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옥상의 텃밭에 토심(土深)이 얕아서일까? 뿌리도 깊게 내리지 못한 채 봄내 쌈채를 제공했던 녀석들이 힘도 못쓰고 뽑혔다. 뽑는 순간 흙먼지가 날렸다. 이렇게 척박한 상태에서도 봄내 쌈채를 제공한 녀석들의 생명력에 고맙고 놀라울 뿐이다.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흙에 습기라고는 단 1%도 안 될 것 같은 상태에서 무엇을 심은들 발아(發芽)할 확률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하여 꽃대를 뽑고 부엽토를 뿌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비라도 한 번 온 다음에 흙이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야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파종(播種)을 미루었다.

태풍소식과 함께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워낙 가뭄이 심해서 이제는 식수조차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많은 양의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데 지난밤 바람은 없고 비는 흩뿌리고 지나간 정도로 내렸다. 겨우 타는 목을 적시는 정도다. 더 내렸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생명을 주는 비가 찔끔 내린 것이다. 도랑물조차 흐르지 않은 정도니 타는 대지는 갈하기만 한다.

그런데도 옥상의 텃밭은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메말랐던 흙에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흙의 색깔이 변했다. 수분을 머금고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준비가 되 것이다. 넉넉한 수분은 아니지만 흙먼지는 날리지 않는다. 삽을 챙겨 흙을 갈아엎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심각한 상태였는데 오늘은 씨앗을 뿌릴 수 있을 만큼의 습기를 머금고 있다. 호미로 작은 이랑을 만들고 열무종자를 뿌렸다. 흙으로 다시 덮으면서 며칠이 지난 후 돋아날 새싹을 그려보았다. 씨앗을 다 뿌린 다음에 조리에 물을 담아 흠뻑 주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열무무침이나 김치를 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씨를 뿌리는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았다. 얼마만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정말 오랜 기억 저편에서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제 어떻게 자랄지 지금은 무엇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흙을 일구고 그곳에 씨앗을 뿌렸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며칠이 지나면 싹을 낼 것이다. 그것은 씨앗을 뿌리는 자의 믿음이고 확신이다.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씨앗을 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볕더위에 땀을 흘리면서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물까지 주고 나니 벅찬 마음이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열무가 소담스럽게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수고한 보람을 지체들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생명과 섭리의 신비를 동시에 체험하고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한 사람의 수고보다 생명을 자라게 하시고, 그 생명을 통해서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통해서 창조의 신비와 생명들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신 능력을 체험하게 한다.

이제 그날을 기다린다. 나의 수고는 잠시지만 생명을 있게 하시고, 그 생명을 자라게 하시며 인간의 필요를 얻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니 감사할 것은 오직 그분께 라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어찌보면 보잘 것 없는 푸성귀지만 그것이 없이는 인간이 필요한 식물을 채울 수 없다. 혹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그것 역시 창조하신 또 다른 생명이니 다를 바 없다. 덥지만 더운 만큼 빨리 발아하여 그 잎을 낼 것이다. 그날에 보이지 않는 손길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식(意識)과 눈(세계관)을 가졌느냐에 따른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단지 자신의 필요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삶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찾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체험하면서 감격하는 삶을 자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분의 섭리를 깨닫고 체험하는 여정을 사는 것이다.

이제 뿌린 열무씨앗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날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한 마음을 나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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