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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세상ㅣ돌아오지 않는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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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전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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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 소식을 알려주었다. 제 새끼도 돌보지 않는 천성이 심히 고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날 녀석의 소리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굳이 기다리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나타나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줬다. 특별히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는 녀석이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겨울을 지배했던 삭풍이 북녘으로 밀려간 후 어느 날 아침 녀석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이면 무심한 듯 봄날을 느꼈다. 녀석의 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겨우내 무뎌진 마음이 깨어나 봄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철따라 돌아다니는 녀석이야 그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오가는 것이겠지만 녀석의 역할을 통해서 인간들은 계절을 느끼고 추억을 담게 했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면 무심코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길을 가다가도 잠시 멈춰 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근해진 바람과 푸르러진 산야를 비로소 보게 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인간들은 그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녀석의 소리는 잠시 가는 길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녀석이 말을 걸어온 것도 어니지만 그때서야 ‘봄이구나!’ 혼잣말을 웅얼댄다.

봄날은 바쁘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환경이라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논과 밭을 오가면서 가을을 준비하는 손길은 아이들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쁘다. 해서 내 어렸을 때는 모내기 방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오월 모내기철에 초등학생조차도 일손을 도와야 했기에 봄방학을 해야 할 만큼 바빴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여유가 없었다. 하늘을 쳐다볼 마음의 여유는 차라리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오직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때도 녀석은 사람들에게 봄을 전했다. 녀석을 만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선가 들려오니 녀석이 왔구나 하는 정도였을 뿐. 어쩌면 ‘너 남녘에 잘 다녀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녀석이 어디에 다녀왔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녀석에게 그러한 관심을 보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고달픈 현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무심할 수밖에 없는 바쁜 현실 앞에 무심함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녀석은 봄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신이 왔다고 열심히 “뻐꾹 뻐꾹 뻐꾹” 울었다. 인간들이야 무관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하든 말든 봄을 노래했다. 그렇지만 녀석을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한 듯 봄을 마음에 담았다. 비록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은 없었지만 봄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녀석은 사람들에게 봄날을 그렇게 전했다.

 

논과 밭을 갈기 위해서 들로 나가는 소의 목에 매달린 워낭소리와 함께 봄날의 들녘을 깨우는 것이 녀석이었다. 느린 소의 발걸음에 맞춰 워낭소리가 정겹게 울리면 뻐꾸기는 자신이 등장해야 할 때를 알았다는 듯 울어댔다. 비록 고달픈 현실이었지만 그렇게 봄날에는 그들이 만들어준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교향곡이 있었다. 그것을 만들어준 것은 자연의 생명들이었고 녀석은 하늘의 지휘자였다. 평소에 연습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날의 연주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굳이 악보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모두 즉흥연주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지휘자가 돌아오지 않으니 봄날이 다가기까지 봄의 교향곡은 연주되지 않는다. 금년에도 녀석이 오지 않으니 교향곡 감상은 틀린 것 같다. 벌써 모내기도 끝나 가는데 아직도 오지 않았으니 금년의 봄 음악회는 기대할 수 없을 같다. 한데, 녀석이 오지 않는 것이 금년이 처음이 아닌 것이 심상치가 않다. 아무리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빠지지 않고 와서 봄맞이 연주회를 해주었는데 ···. 녀석이 돌아오지 않으니 봄맞이 음악회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하기야 지휘자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얼마나 지나서야 느끼는 인간들에게 굳이 와서 음악회를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지 모를 일이니 가는 봄날이 아쉽기만 한 것인가.

지휘자를 잃고서야 생각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지휘자는 안중에도 없는데 봄날의 교향곡 연주를 기다리는 인간은 또 뭔가? 그저 지나는 봄날이 아쉽다고 하는 인간은 책임이 없는 것인가? 하나님이 함께 있게 했고, 봄이 오면 봄의 교향곡을 노래하게 했던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음에도 무심하기는 매양이니 어쩌면 그날을 누릴 자격이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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