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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세상|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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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전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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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요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종교적인 목적으로 표현한다면 금식은 경건과 종교적 수행의 한 수단일 것이다. 즉 인간이 종교적인 수행을 목적으로 육신적인 욕구를 철저하게 절제함으로써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한 신앙심에 집중하고 고양시키겠다고 하는 의미를 담은 수행의 한 수단일 것이다.

반면 금식을 다시 기독교 신앙에서 이해한다면 두 가지 측면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함으로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금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면서 생명과 직결된 음식을 의지에 따라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식은 인간이 오직 하나님 앞에 서겠다는 경건을 위한 최종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에서의 금식은 수행의 수단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수행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복음을 통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수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하나님이 직접, 그리고 먼저 인간을 향해서 다가오심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그럼에도 금식을 말하거나 금식을 시행하는 것은 그것을 수행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적 깨달음과 의지를 통해서 신실하게 서기를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식이 비록 수행의 수단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신실하게 서겠다고 하는 의지적 표현이기 때문에 은혜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책임있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은혜 안에 있어야 할 자신의 모습이 그 은혜를 잊어버린 채 세상을 기뻐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을 다시금 하나님 앞에 세우겠다고 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그 안에 있기를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함으로 깨닫는데 그 의미가 있다. 즉 금식은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 고통스러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금식에 동참하여 스스로 고통 가운에 처하여 봄으로써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서 받으신 고난에 담긴 사랑과 은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받은 은혜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무한하고 전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금식에 동참하여 체험하는 가운데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서 감당하신 고난에 담긴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에 대해서이다. 이 깨달음이 없이 단지 굶었다는 것으로 금식을 말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행의 수단으로서 종교적으로 만족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유대교의 바리새파를 향해서 예수님이 책망하시던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종교적 수행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디도 없는 지극히 종교적인 자기만족으로 만족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금식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하는 말도 가당치 않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금식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난은 인간으로서 누구도 대신 지거나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의미로 금식의 고행을 자초한다는 것은 결코 가당치 않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은 보편적 희생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예수님의 희생을 보편적인 희생으로 본다면 누구나 예수님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이 되며, 그 결과 예수님은 더 이상 인류의 구세주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의 모범적인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이 어떤 희생과 헌신을 자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보편적 가치로서의 희생이지 그 희생이 인류를 대속(代贖)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로서, 그분 앞에 경건하게 서는 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도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에 합당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근본이며 도리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적으로 금식할 수 없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회를 만들어 금식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은혜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따라서 금식은 기쁨과 감사의 표현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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