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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세상|보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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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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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렸다. 마침 스터디 모임 중이라 받을 수 없었다. ‘지금은 받을 수 없으니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고 하는 입력된 메시지를 보내고 스터디를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 스터디가 끝나고 잠시 담화를 한 다음에야 전화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음이 생각났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분의 전화번호가 입력된 이래로 개인적인 통화를 한 적이 없기에 더 궁금했다.

나는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한 번 울렸을 뿐인데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수화기에서는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갑자기 전화를 드려서 ···. 별것 아닌데 보름나물 준비하다가 생각이 나서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괜찮으시면 주소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의 일방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 ?’ 응대해야 할 말이 궁했다. 그 분과는 두 번 밖에는 본적이 없고 전화번호를 받아 입력해놓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냥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어지는 그 분의 말을 듣고서야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이 하루에 세 번 밖에는 차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지라 아침에 첫 버스를 타고 읍내의 우체국에 와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우체국에서 목사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나와서 우체국에 앉아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니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돌아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어떤 계획으로 읍내에 나왔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내 전화를 받고서야 다음 일정을 진행할 것인데 전화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앉아서 전화기만 들여다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바로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한 마음이다.

 

다음 날이다. 집배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000님이 보낸 택배를 배달할 예정입니다.” 종일 일을 보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서 보내온 택배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말린 가지나물, 무말랭이, 고추부각, 냉동건조 대추, 콩가루’ 등이 들어있었다. 너더댓 명이 한 끼 식사를 위한 반찬을 할 정도의 양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어떤 기회에 알게 된 것이 전부인데, 그리고 특별한 친분이 있던 분도 아닌데 나를 기억하고 보름나물을 준비하다가 생각이 나서 보낸다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늦었기에 다음날 문자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이내 답글이 왔다. 답글은 간단했다. “두 분이 한 끼 밥상하시면서 웃으세요!” 따뜻한 마음을 담은 몇 가지의 묵나물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이 전해졌다. 외진 산속에 살면서 장류(醬類)를 만들어 도시인들에게 팔아서 겨우 살아가는 분이다. 집 마당에 장독을 여럿 준비해서 유기농 재료들만을 사용한 간장,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을 만들어서 아름아름 입소문을 통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니 나도 그분의 생활환경이나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보름나물은 그분의 마음을 내게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산다면 얼마 되지 않는 묵나물 몇 가지다. 하지만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장에서 몇 푼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구나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분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매우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팔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분이 할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마음을 담아서 전해준 사랑이다. 그것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분이 사는 곳을 찾아가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귀한 사랑에 감동하는 밤이었다. 보름 명절이 잊혀진 것이 오래이니 특별하게 준비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보름나물 덕분에 기쁨과 감사가 더하는 밤이었다.

 

이렇게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 나눔과 사랑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특별하고 굉장한 것을 갖고 광고하며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디작은 것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것이 귀하고 아름답다. 그것을 나누겠다는 마음이 귀하다. 귀찮은 일이고, 누가 상을 주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담긴 것을 나눌 대상을 생각하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고, 그것을 받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까? ‘너’와 ‘내’가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똑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너’를 기억하는 것이고 작은 것 일지라도 나눌 수 있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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