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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고민 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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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우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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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선교사

필자의 셋째 의붓 딸은 둘째 아이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둘째 아이는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된 후에 만났고, 그리 길지 않은 사이에 큰 변화를 받아 교역자의 길을 택하였다가 갑작스럽게 신앙을 져버리고 애인을 따라 나간 것과는 반대로 셋째 아이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필자가 처음 만났다.
당시 그 아이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방콕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마약에 쩌들어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이만원 정도의 돈조차 없어서 필자 부부가 고향으로 돌아올 차비를 도와서 도이따우에 돌아왔다. 그레서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된 것과 그 아이의 아버지가 마약 때문에 우리 교회의 교인의 총에 맞아 죽은 사실과 그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일, 그 아이가 새 아버지를 싫어해서 날마다 다투던 일들을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아이의 처지가 가련해서 아무 생각 없이(?) 양녀로 삼았고, 그 아이가 거기서 중학교를 마친 후에 시내로 데려왔었다. 그 아이의 고집이 보통 센 것이 아니어서 양녀라 해도 필자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않았다. 당시 필자의 여건이 그 아이를 정말 친 자식처럼 돌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그 아이를 시내로 데려오긴 했지만 우리가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아이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는 잘 아는 한국인 집사님댁에 있게 하였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제대로 훈련된 것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공부도 엉망이어서 우리 집보다는 교육환경이 좋은 집사님네서 식모로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집사님께는 상황을 설명하고 필자가 딸로 삼은 아이니 잘 돌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웬은 거기서 공등학교를 다니며 1년 반을 지낸 후 교회 기숙사로 들어오게 하였다.
교회 기숙사로 들어온 순간부터 교회는 웬 때문에 수시로 몸살을 앓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딸이...” 하는 말을 하며 뒤에서 수근대곤 했지만, 웬은 저들의 수근거림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목사님의 딸이라는 위치 역시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기 기분과 성격대로 아무하고나 부딫히고 싸우며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웬이 필자의 딸이라는 위치 때문에 아무도 웬과 맞붙을 생각을 안했다. 아니 오히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 하는 자세로 웬을 따돌리고 있었다.
한번은 아내가 교회 기숙사의 학생들 가운데 웬과 또 다른 아이 하나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아이 둘이 모두 아내의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할 뿐 만 아니라 아예 포기하는 듯 해서 아내가 짜증을 내면서 등을 한 차례 때린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웬은 아예 아내를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았고, 아내도 그런 웬을 예브게 봐주려 하지 않았다. 필자도 당시에는 웬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았고, 그저 딸이라는 이름과 그래서 기숙사에 있게 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이에게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었다. 웬도 우리의 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겠다는 그런 의식은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웬은 항상 스스로 고립되어 있었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을만한 노력을 하질 않았다. 자기 감정에 따라 며칠 좋았다가는 순식간에 돌변하는 웬의 태도에 그 누구도 웬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없이 웬에게 분위기를 맞춰주는 정도였다. 그런 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필자는 느끼고 있었다.
- 다음 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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