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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고민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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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우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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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선교사

선교사도 사람이니 인정에 끌리지 않을 수 없고 특히 부모님과 자식들 문제는 늘 해외에서 생활해야 하는 선교사들을 안타깝게 하는 문제이다. 특히 필자처럼 외아들에 홀어머님을 둔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필자의 아버님은 필자가 처음 선교사로 출발하여 영국에서 한인교회와 선교회관을 돌보는 사역을 하면서 있은 지 약 1년 쯤 되었을 때 소천하셨다. 필자는 연락을 받고 급히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지만 비행기가 한국에 닿기도 전에 아버님은 마지막 숨을 끊으셨다. 당시 아버님은 위암을 앓고 계셨고, 그 사실은 필자가 영국으로 출발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평소에 자식 사랑하던 티를 내지 않던 아버지셨고, 젊으셨을 적에 어머님께 하셨던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들과 술, 담배를 드시며 가정을 그리 넉넉하게 돌보지 못하셨던 아버님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그리 좋질 못하였었다. 그런데 필자가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고 준비를 다 마치고 부모님을 뵈러 가서 잠시 머물던 마지막 날, 필자에게 아버님께서 내뱉으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어린 짧은 한 마디가 아버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왜, 꼭 네가 가야 하냐?”
그 말씀은 아들을 위험스런 타국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버님의 염려이셨고, 그 한 마디의 말뜻을 이해한 필자는 아버님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이해하고 지난 기억들을 털어버리게 되었다.
아버님도 하나님을 믿고 계셨기에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선교사로 나가게 되는 아들을 말리지도 못하고, 내뱉은 불평 한 마디가 어쩌면 아버님이 아들에게 말로 표현하신 처음이자 마지막의 사랑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들 가족을 선교사로 보내놓고, 가슴이 허전하셨는지, 얼마 안 되어 아버님은 암이란 진단을 받으셨고, 몇 번 치료를 받으시다가 치료받기를 포기하시고 집에서 계시던 중에 어머님께서 연락을 띄우시기를 “아무래도 네 아버님이 얼마 못 사실 것 같으니 와서 보고 가라”고 하신 말씀에 선배 선교사님께 허락을 얻고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한국으로 달려갔더니 아버님께서 저희를 보시고 기분이 좋으셨는지 힘을 내어 일어나시고 걷기도 하시며 나아진 것 같아 영국으로 돌아갔었는데, 그 후 열흘도 채 안되어 아버님은 천국에 드셨다.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기는 아들인 나보다 어머님이 더하실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늘 아버님 곁을 지키시며 병수발을 힘써 하셨다. 어머님은 나보다 훨씬 아버님을 잘 이해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내게, “몇 푼 되진 않지만 베개 속에 돈을 좀 넣어둔 것이 있으니 당신이 쓰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나중에 어머님이 꺼내보니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돈이 들어 있었다. 그나마 자기 때문에 고생했던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 했던 남편을 좋게 기억하시고 계신 것이다. 지금도 어머님께서 이 얘기를 하실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으시곤 하신다.
그렇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님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내딸과 함께 지내셨다. 막내는 어머님에게 하나 밖에 없는 자식과 같았고, 남편의 역할까지 하면서 어머님을 돌보는 동시에 선교사인 오빠를 돕고 싶어 간호와 침술을 배우며 여러 가지로 선교사의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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