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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고민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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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우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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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선교사

막내 동생은 교회에서 많은 일들로 바빴다. 그 아이는 항상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우선적이었다. 그래서 전에 있던 교회의 제자들이나 후배들도 자주 막내 동생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그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도 들어주며 상담을 해 주기도 하는 등 준 목회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섬기던 교회에서도 평일에는 선교원의 교사를 하면서 교회 성가대, 찬양팀, 중고등부 성가대 지휘 외에도 힘이 닿는 대로 교회 일에 힘을 다 쏟았다.
막내가 쓰러지던 며칠 전에 이미 막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선교원이 끝나고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동안 차에서 깜빡깜빡 졸기도 하고, 잠시 멍한 상태로 지난 몇 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무 기억도 못하는 등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만큼 지쳐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기도를 가려고 일어나 준비하다가 쓰러진 후 병원응급실에 한 달 동안 한 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았다.
막내를 담당한 젊은 의사는 막내의 뇌파가 쉬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먼저 그것을 잡아야 한다며 등창이 나기까지 신경 안정제를 투여했다. 인공호흡기를 항상 차고 있어야 하는 응급 상태여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일도 어려웠고, 우리 가족은 기도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 쯤 되었을 때, 지켜보자던 담당 의사는 끝내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마지막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도 등창이 나고 바짝 마른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가족회의를 열어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고 그만 하늘나라로 보내자”고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그럴 수 없다고 큰소리로 울며 반대했고,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낸 후 둘째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던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막내의 영혼을 불러가셨다. 가족의 손으로 호흡기를 떼어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것 같았다.
사실 막내는 필자에게는 꼭 딸과 같은 아이였다. 나이 차이는 9살 밖에 안 되지만 필자는 그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 그 아이를 업어주고 놀아주고 크면서 글자와 공부를 가르쳤고, 그래서 그 아이도 커서는 오빠 같은 신랑감을 찾으려했고, 오빠를 도와 선교사로 일하고 싶어 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그 아이를 더 이상 세상에서 고생시키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운 서른의 나이에 고이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이었던가 보다. 필자는 그것이 그 아이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막내도 하늘나라로 간 후에 정말로 남겨진 것은 어머님 한 뿐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믿음과 충성심을 시험해 보시려는 것이었던지 그런 어머님을 두고도 필자는 선교지를 떠나 어머님을 돌보면서 사역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둘째네 가족은 당시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고, 어머님은 거기 가서 지내시기 불편해 하셨다. 그래서 태국에 와 계시라고 제안을 했지만 한 번 와 보시고는 날씨 때문에 몸이 안 좋다고 하시며 잘 오시려 하지 않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어머님이 지내실 수 있는 집한 칸이 있었고, 어머님은 건강하신 편이셨다. 교회에서 권사로 기도생활과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시며 신앙으로 지내셨기에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으셨다. 아마 실제로 그러셨을 것이다. 그저 자식 위해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셔서 오늘까지 필자가 맘고생 하지 않고 사역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80이 가까워오는 어머님을 혼자 계시게 하고 사역지에 있는 필자의 맘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할 고민을 안은 채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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