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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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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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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7.>


몇 년 만인지? 참 많이 춥다는 생각이다. 아니, 입에서 춥다는 소리가 저절로 난다.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매섭게 춥다. 근년에 들어서 겨울이 춥지 않아서 문제가 된 적이 여러 차례였는데 금년 겨울은 너무 추워서 문제인 것 같다. 동파는 물론이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 특별히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농가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그런가 하면 황태를 생산하는 덕장에서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춥고 눈이 자주 와야 황태가 잘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무엇 하나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 같다. 추워도 문제이고 따뜻해도 문제이니 말이다. 어찌해야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만족은 주어지는 환경이나 조건에 제한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만족은 단지 주어진 환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대처해 가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주어진 환경 내지는 조건이 만족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조건이 그의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건의 차이는 그 자체로 차이일 뿐이다. 다른 조건일지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동물과의 다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지구상에서 국민적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최빈국이면서 현대문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나라인 부탄왕국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만큼 주어진 환경이 서양의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월등하다는 말인가? 최빈국 가운데 한 나라인 부탄왕국은 지리적으로도 산악이 국토의 전부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환경도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쁘지만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면 만족이나 행복이 단지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제한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주어진 목적 내지는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단지 목적과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손에 잡은 것은 있을 수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기쁨은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성취감은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눌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정도 누리지 못한다. 비록 부족할지라도 인간은 과정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나누며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는데 있다. 이렇게 추운 날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춥다고 야단이다. 눈이 오면 온다고 좋아하다가 그 순간만 지나면 왜 이렇게 눈이 오냐고 한다. 추워서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눈이 와서 미끄러우면 미끄럽다고 원망을 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춥기 때문에 겨울 패션을 하고 뽐내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눈이 내리는 날 추억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그 눈이 내리면 곧 얼게 될 것이고 미끄러운 것은 당연히 동반되는 것 아니던가? 이미 그러한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원망과 탓을 한다.
추우면 조금 더 두꺼운 옷이라도 입을 것이고, 눈이 와서 좋으면 그것을 그대로 누리면서 내린 눈이 불편할 것 같으면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도로나 골목길이 얼음판이 되어버렸으니 왜 이리 춥냐고 소리를 높인다. 왜 이리 미끄럽냐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것이 겨울이 아니던가.
따뜻한 실내에서 소복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노라면 겨울의 여유와 낭만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겨울은 가슴에 남겨진다. 도시에서 겨울은 그렇게 창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까. 실내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낭만은 그곳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니 말이다. 조금 전에 내리는 눈을 아름답게 바라보았건만 거리로 나서는 순간, 그리고 핸들을 잡는 순간 원망으로 변한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왜 이리도 눈이 많이 오냐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순간의 만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인간은 그 순간의 만족을 좇다가 인간의 본질까지 잃지 않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한 관계, 곧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에 있도록 하셨던 게다. 하지만 아담 이래로 인간은 그 만족을 상실한 채 스스로의 만족을 찾으려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 결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건만 그 순간만큼은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자화상인 것 같다.
겨울이 깊다. 아직 이 겨울이 지나려면 지금까지 지나온 만큼은 더 시간이 흘러야 될 것이다. 얼마나 더 일희일비(一喜一悲)해야 겨울나기가 끝날지. 그럼에도 변함이 없는 것은 봄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계절의 주기는 인간의 변덕과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기쁨과 감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 때문에 오늘도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소망을 말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닐까. 추운 겨울날 봄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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