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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과의 전쟁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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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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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일반적으로는 그저 덮어지고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그 상처가 깊고 부모에게 믿음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면 평생 잊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웬’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 아이가 부모에게 받고 자란 상처는 그 부모가 마음이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웬’의 부모들은 착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 역시 그들의 부모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저 본능대로 살면서 그들의 자녀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상처를 남겼다. 비록 아빠가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이 마약을 하다가 친구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필자는 보아 알고 있었다. 필자는 그녀의 아비가 ‘웬’에 줄 무언가를 가지고 교회 울타릴 밖을 서성이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하지만 당시 어린 ‘웬’은 아비란 그저 사려졌으면 좋을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웬’의 엄마는 그 후 동네에 들어와 그럭저럭 살고 있는 어떤 산족사람과 결혼하였다. 명색이 타이족인 ‘웬’으로서는 그것조차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타이족이 뭔지 모르면서도 타이족이라는 자존심은 ‘웬’의 마음 속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얼마 후 ‘웬’의 엄마는 그 남자와 헤어지려고 방콕으로 내려갔다가 3년 만에 도이따우로 돌아왔다.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듯 하더니 끝내는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그 때 ‘웬’은 한사코 결혼을 반대했음에도 그 엄마는 결국 ‘웬’의 간절한 마음을 뿌리치고 남자를 따랐다.
‘웬’에게 남겨진 이러한 상처는 ‘웬’으로 하여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 하나만은 분명히 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그의 아버지가 되기로 하고 ‘웬’에게 의사를 물었을 때도 지금 생각해 보면 ‘웬’은 아무 생각 없이 응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좀 생기고 이것 저것 잘하는 목사님이 자기의 아버지가 되어준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좋았을는지 모르겠다.
‘웬’은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들었다. 그래도 대학 3년을 마쳤고, 오랜 시간 교회에 있으면서 훈련되고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그녀의 본성과 잠재의식은 변치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굳어져서 청소년 때보다 더 다루기 어렵게 변했다. 차라리 그 아이를 처음 데려올 때부터 우리 집에다 데려다 두고 키웠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많이 변했을텐데...
‘웬’은 목회자가 되기로 했으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은 신대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왜 대학을 마치지 않느냐고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만약 자기가 나중에 목회자로서 일할 수 없게 된다면, 학위도 없는 자기의 앞 날에 대한 불안감이 수시로 드러나서 시간이 늦기 전에 다시 대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리고 그런 ‘웬’에게 필자는 절대로 안된다고 못을 밖았다. “네가 세상을 끈을 놓지 못하고 나중에 도망갈 자리를 마련해 놓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대답이다. 필자도 고민한다. 하지만 지금의 ‘웬’의 성격이라면 어차피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힘들지만 아비된 필자만이라도 ‘웬’을 믿어주고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고자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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