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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엔 왜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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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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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고 있는데 유독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뭔가 냄새가 난다고 소리를 질러도 무슨 냄새가 나느냐고 되받아 소리를 친다. 그러던 어느 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냄새의 근원이 드러나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다. 안 난다던 냄새가 밝혀짐으로 인해서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들이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판박이처럼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인다.
정권의 임기가 다돼가는 시점에 이르니 곳곳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한다. 그와 함께 터지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그 중에도 권력의 실세 주변에 있었던 인물들이 줄줄이 엮여있는 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확인된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들은 결코 그런 일들이 없다고 했는데 결국 커다란 은팔찌를 차고 뉴스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아프기가 그지없다. 분명히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가졌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이건만 앞섰던 권력자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똑같은 시행착오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은 현실이 드러남으로써 국민은 아프다.
권좌에 오르면 갑자기 눈이 나빠지는가? 귀까지 들리지 않는가? 한결같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리치는데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니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결코 다르지 않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평범한 민초이지만 납득하기가 정말 어렵다. 권력과 그 언저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되었던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선임들과 닮은꼴인지 국민들은 좌절감을 느낄 정도다.
왜 그들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둘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여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누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분리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즉 내적인 요인은 권좌에서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과 주어진 권력의 힘을 느끼면서 자신 안에 있는 판단기준이 흐려짐으로 판단 능력이 퇴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좌에 오르기 전과 후는 확연하게 달라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외적인 요인은 권력을 가진 사람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힘을 가진 자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몰려들어 그들이 눈을 어둡게 만든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고, 선각자들도 이 사실을 깨달아 교훈하고 있다. 힘이 있는 곳에는 온갖 목적과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권력의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 있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힘이 있는 동안에 그 힘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관계의 지속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까지만 지속적 관계가 있을 뿐이다. 더 이상 힘이 없거나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썰물처럼 밀려나간다. 어제까지의 관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코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현재 자신에게 어떤 대상인가를 생각할 뿐이다. 가치가 있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힘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려고 한다. 결국 권좌에 있는 사람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들어야만 그 힘을 이용할 수 있기에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에게는 현명하고 판단력이 탁월하며 의지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는 충직한 보좌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적인 일인자에겐 충직한 이인자가 있었던 것 아닐까. 한 시대와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겐 눈과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섬김이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이인자이기를 원하지 않으니 권좌에 오른 사람의 눈과 귀는 제기능을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만 탓할 수 없음은 변할 수 없는 사실 아니겠는가.
결국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도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도 자신의 본분과 위치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현실에 대해서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없을지라도 누군가 보고 들은 것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마저 여의치 못한 것은 모두 저마다의 꿍꿍이가 감춰져있기 때문이리라. 권좌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가졌던 눈과 귀만큼이라도 보고 들을 수 있는 통치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굳이 소통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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