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깨달음이란 자기를 부정하는데 이르는 것이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을 무(無)로 여긴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창조주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뜻과 능력 앞에 자신의 진실한 의지로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굴함은 전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는 가운데 기꺼이 순종하기를 자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를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앞에서 부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그 앞에서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음을 필연적으로 고백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함은 곧 믿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믿음이 없이는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으며 동시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없음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부정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앎으로서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참 신앙이다. 만일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자기를 부정한다면 맹목적 주술신앙으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도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을 앎으로서 자기를 부정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형상을 주셔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특별한 뜻을 가지셨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기부정이란 인간의 필요나 목적을 전제로 하나님 앞에서 맹목적으로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과 큰 은혜를 깨달음으로써 그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시인하는 것으로서의 자기부정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기부정이란 자기 확인이며 자기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단지 자기를 무(無)로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부정함으로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고 전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은혜 안에서만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도,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는 고백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부정할 수 있기 까지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을 깨닫고, 그 가르침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면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심령으로 깨달아야 한다. 단지 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인격을 통해서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게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유(思惟)하는 일과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힘들어한다는데 있다.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그것을 기뻐할 수 없다. 사유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수단이다. 또한 맹목적이고 주술적인 기도로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 기도 역시 깊은 사유를 동반할 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인격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도 인격을 통해서 고백하고 확인하는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이 배제된 신앙은 주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부정도 같은 맥락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시인함으로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주의적 자기부정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 되심과 인간은 전적으로 그 하나님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인정함으로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