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성경속세상 분류

청소년들의 자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연일 전해지는 어린 학생들의 자살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기쁘고 감사한 소식들이 전해지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는 소식이 반복해서 전해지니 새해를 맞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연이어서 같은 류의 원인과 비슷한 과정에 의해서 아이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사회적 교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 문제가 어제 오늘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미 “이지매”와 관련한 사건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어쩌면 인간이 있는 곳에는 그곳이 어디인 것과 관계없이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담 이후 인간의 타락한 속성 가운데 잠재해 있는 악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나타는 현상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당사자나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교회가 함께 인식해야 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남몰래 고통가운데 방황하다가 최종적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적인 책임이다. 소외되고 약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강구해 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과 사회의 공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속성에 있어서 악함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인격이 온전하게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른들 못지않은 악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살핌과 선도가 있어야 한다.
즉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의식과 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그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관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남긴 일기나 유서에 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집단 따돌림이다. 집단 따돌림은 집요하고 용의주도하며 한 인격체가 망가지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 지속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아이는 그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에는 더 큰 고통이 주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어렵고, 또한 자괴감 내지는 스스로가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두려웠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현실이 알려졌을 때 피해 아이와 가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양자가 모두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은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자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국가 전체의 문제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에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교회적 의식과 책임 또한 매우 신중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의식과 실제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교회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에 대한 의식을 준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게 약자들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지만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아름다운 사회나 국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배려하는 것은 한순간에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동안 배려할 수 있는 의식이 준비되어야 한다. 깨달음과 훈련에 의해서 배려할 수 있는 의식과 행위까지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매우 의식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자신과 교회, 우리 사회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아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신체적 약자 등을 살펴야 할 것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들어줄 수 있는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의식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소리가 쉽게 들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기 연예인이나 저명인사의 소리는 쉽게 들리지만 상대적인 약자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리는 들으려고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가 없이는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청소년들의 폭력과 비행, 왕따에 대해서 사회적 국가적인 문제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가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하다면 결코 그들의 미래를 이끌어 줄 수 없다. 국가적 미래도 만들어 갈 수 없을 것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