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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회 매각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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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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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빚 때문에 법정관리에 처하여 있던 수정교회가 끝내 가톨릭교회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충격을 느끼면서 기사를 읽었다. 수정교회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이에 대해서 글을 썼던 기억과 함께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면서 다시 이 글을 쓰고 있다.
수정교회가 가톨릭교회에 팔렸다는 것은 단순히 한 교회가 가톨릭교회에 팔린 것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아프다. 현대복음주의(신복음주의 이하 같은 의미) 사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지적해오고 있는 필자는 염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 아프다. 몇 마디로 그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현대복음주의 사상에 있어서 두 가지 정도만 열거한다면 첫째, 교회성장방법론을 도입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경영학적 방법을 적용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수정교회 개척자인 로버트 슐러 목사는 세계 최초로 초대형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경영방법을 교회성장의 원리와 동력(動力)으로 적용하여 성공(?)한 사람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그는 방법론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현재 한국교회에 접목되고 있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방법론과 정반대의 신비주의적 방법론까지 신학적 기본에 대한 고려가 없이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하는 생각으로 도입을 했던 결과가 그 한계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그를 현대복음주의의 상징 내지는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추종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현대복음주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한계, 특히 교회관에 있어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복음주의 사상은 교회관에 있어서 공교회에 대한 개념이 전적으로 부족하고 개교회중심의 교회를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감춰져있다. 실제로 현재 한국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미국의 대형교회들은 대부분 독립교회이다. 그런데 개교회주의는 교회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한 교회가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공교회를 통해서 위기에 대처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나 개교회주의나 독립교회의 경우와 같이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교회는 완전히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건은 단지 수정교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즉 현대복음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교회들이 직면하게 되는 미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복음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같이 하고 있는 그러한 교회들은 필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즉 신비주의적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인본주의적인 방법들을 통해서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수정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을 재연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후임자 문제를 포함해서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공교회적 원리를 공유하고 있지 못한다면 역시 수정교회와 같은 모습을 재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형성의 원리를 신학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가운데 공교회를 이루는 의식과 의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교회는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언론들은 수정교회가 매각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녀를 후계자로 세웠다는데서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아들과 딸이 후계자로서 바통을 이어받아서 목회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교회를 세습시켰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학적인 의식이 결여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실제로 목회의 세습이 이루어졌던 시기와 교회가 운영조차 어렵게 되는 시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후임자 문제가 수정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단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정교회가 지금까지 성장을 지향해 오면서 행했던 방법들이 생명력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다. 이미 로버트 슐러 목사가 은퇴할 무렵부터 성장의 한계 내지는 방법론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1세대 지도자로서 그의 방법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녀들이 후임자로서 활동을 했지만 단지 방법론으로 신자를 모으고, 그 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자녀들에게 세습되기 전에 유명한 경건주의적 신비주의 지도자인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가 후임역을 감당했었지만 그도 수정교회의 퇴보를 막지 못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는 것은 교회와 신앙의 생명력은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일이나 심리적 방법으로 결코 유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충족감을 주거나 관심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생명력을 회복하거나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는 못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방법과 열정이 곧 복음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이미 걱정하는 글들이 나와 있지만 정작 현대복음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에는 닿지 않는 것 같다.
수정교회의 모습은 미래의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앞서간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여 그 뒤를 따라가는 우를 범하는 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필자의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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