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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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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마치고, 아침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씩 앞뜰에 물을 준다. 오늘 아침은 물을 주면서 떨어진 잎들과 흩어진 나뭇가지들을 정리하였다. 6년 전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사다 심은, 당시는 가슴도 올라오지 않던 노란줄기야자수는 벌써 지붕 위로 가지를 벌리고 서 있다. ‘나무는 이렇게 잘도 자라는데...’ 생각하며 나무를 보다가 눈이 머문 곳은 둥지 아래 부분에 껍질이 벗겨서 검게 변해버린 상처자국이었다. 그 상처는 필자가 몇 년 전에 가지를 정리하면서 낫질을 잘못해서 살짝 찍었던 자국으로 그 때는 별것 아니게 생각했는데 그것이 이제는 뚜렷하게 흉한 자국으로 변해 있다.

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오늘까지 삶 속에서도 저런 상처들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선교사로서 처음 출발했던 영국에서 겪었던 일들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태국에 선교사로 들어와서 초기에 당했던 심적인 고통들은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것들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싸매어지고 굳어져서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비슷한 일들을 만날 때면 다시 불거지곤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으로 치유 되지 않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성령으로 치유 받았고, 또 다치고 다시 치유 받고 있는 중이라고...” 이 자국은 지금은 필자의 삶이나 사역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어쩌면 바로 그 상처들이 필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필자는 ‘내가 받은 그런 상처들을 후배들에게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좋은 리더십’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런 사유로 ‘태국 비전 리더십 훈련원’(Thai Vision Leadership Center)을 주 사역하고 하고 있다.

필자의 가슴이 넓지 못하고, 성품이 강하질 못해서 그런지 아직도 가끔씩 상처를 받는다. 이제는 상처를 싸매는 방법을 잘 알아서 예전처럼 그리 크게 마음에 자리 잡지 않지만 아직도 때로는 마음을 쓰고 속으로 고심하며 혼자서 삭일 때가 많다. 그런 대부분의 일들은 주로 윗사람들로부터 받지만, 후배들이라고 해서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익숙해지고 많이 건강해져서 쉽게 털어버리고 넘어가는 때가 더 많아졌을 뿐이다.

돌려 생각해 보면 그런 상처를 필자만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혹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힌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누구누군가가 필자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이 든다. 그런데 그들은 필자에게 표현하지 않았고, 혼자서 가슴에 묻어두고 지내고 있겠지. 그리고 필자를 만났을 때, 때로는 잊어버렸거나, 혹은 짐짓 안 그런 척 하며 같은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까?
야자수르 보니, 멋있게도 자랐다. 상처는 남았지만 그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좋은 교훈이 되고 지혜와 용기를 주고 있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아픈 것 좀 잊고 살면서 더 크고 멋있게 가지를 펼치고, 멋지게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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