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분류

태국선교이야기|마히티 장로님 (I)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도이따우 마을은 치앙마이 시내로부터 약 130 km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김 선교사가 처음 이 마을을 알게 된 것은 2000년도 였고, 일년 간은 협력하며 일을 하다가 이듬 해에 담임 목사로 자청하여 교회를 개척한 시내의 모교회로부터 위임장을 받고 담임목사로 돌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히티 씨와 또이 씨 부부는 타지에서 그 마을에 작은 땅을 사고 들어와 살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멀리 떨어진 교회로 출석하는 것이 힘들어서 기도하던 중 출석하던 모교회와 싱가폴 교회의 후원으로 이 교회를 개척하여 돌본지 2년이 지나고 있었다. 담임교역자 없이 평신도들이 6-7명 정도 모여 주일 예배만 드리고 있었는데, 김 선교사가 담임을 맡고 전도하고 심방하며 돌보자, 1년 만에 주일 출석인원이 40명에 이르게 되었다. 김 선교사는 또이 씨를 개인적으로 1년 간 훈련시키다가 신학교에 보냈고, 그 동안 그곳에 새 예배당 건물을 지으면서 마히티 씨를 장로로 장립하여 교회를 돌보게 하면서 필자는 시내교회를 새로 개척하여 그곳 목회에 전념하면서 한 달에 한 주일씩만 도이따우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인도하고 보살피는 동안 마히티 장로님은 교회를 맡아 관리하였다.

당시 마히티 장로님의 나이는 70을 넘고 있었고, 나름대로는 교회를 돌보려고 애를 썼지만 토박이 교인들과 마찰도 생기고 하면서 교인들은 하나 둘씩 떠나고 교회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교인들이 마히티 장로님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가 장로가 된 후로 태도가 변하여 김 선교사에게만 잘 보이려 하고, 교인들을 무시하고 제 맘대로 교회를 끌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김 선교사는 교인들을 방문하여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관계를 개선하곤 했지만 김 선교사가 없을 때면 한 번 마음을 돌린 교인들은 좀처럼 마히티 장로님을 따르지 않아 교회는 늘 어려운 중에 있었다. 결국 김 선교사는 교인들 가운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7명을 선출하고 마히티 장로님도 그 가운데 일인으로 7인 운영위원회를 결성하여 교회를 돌보게 하였으나 잠시 좋다가 또 다시 문제가 일어나는 등 도이따우교회는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김 선교사가 있을 때에만 조금 좋아지는 듯 하다가 김 선교사가 없으면 교인들끼리 다투고 교회를 떠나는 문제를 계속 반복하였다.

마히티 장로님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50이 넘어 아내가 떠난 후 새로 얻은 20살 연하의 또이 씨와 함께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늦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신앙의 훈련이나 연단이 없이 교회의 장로가 되면서 아마 김 선교사가 없는 곳에서 권세를 행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한 마을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들에게 그 권위가 먹혀들지 않았고 도리어 기 싸움으로 인해 교회의 분란만 일으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가 교회를 지키려 하고 교회를 위해서 애쓴 것은 참 칭찬할만한 일이나 교인들과 사이가 좋지 못하여 교회 안에서 늘 어려움을 당하였다. 교회는 사랑의 섬김과 자심의 삶의 모범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늘날 이런 문제는 마히티 장로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