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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마가복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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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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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이희우 목사

미국의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가족과 사회에 너무 깊은 상흔(傷痕)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전쟁 중 버지나아(Virginia) 주의 래퍼핸녹 강(Rappahannock river) 전투 때 강을 사이에 두고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한 남북 군인들은 연일 계속되는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으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피곤했지만 지친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양군 군악대의 연주 배틀 중 어두운 적막을 깨고 아련히 들려온 한 곡의 노래에 양쪽 군인들 모두가 다 함께 부르며 울다가 24시간 휴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곡이 바로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내 집뿐이리

 

예수님도 가정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지지자들이기보다는 예수님의 반대자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밖에서 바쁜 예수님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불만을 갖고 있던 터에 예수님이 미쳤다” “귀신들렸다는 소문까지 들리자 친족들과 어머니와 동생들은 즉각 예수님을 데려가기 위해 달려왔다. 본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가족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바란다.

 

1) 먼 길을 달려온 가족애

 

우선 가족들의 불만은 예수님이 식사도 거르며 쉬지 않고 일하고, 또 너무 많은 일을 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근자에 소문도 좋지 않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데려가려고 달려왔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달려왔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일 나사렛(Nazareth)으로부터 왔다면 가버나움(Capernaum)까지 지금은 차로 20분 정도 걸리지만 먼 길(30마일쯤)이다. 사실 예루살렘의 서기관들이 악의에 찬 반대자들이었다면 가족들은 사랑으로 인한 반대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렇게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오직 가족애 때문이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단위이며 개인의 삶의 안마당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또 위로와 안식과 재충전과 행복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가장 포근하고 달콤한 삶의 자리가 가정이라면 모름지기 성도들은 가정을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꼰대의 잔소리(?) 같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2) 의외의 반응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 도착한 가족들은 밖에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찾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 의외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33), 그리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다. 정말 미치시기라도 한 것일까? 마치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아예 무시하는 듯한 말씀이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부른다는 전갈을 받았다면 그들을 맞으러 나가거나 안으로 모시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닌가? 훗날 사도 바울(The Apostle Paul)이 디모데전서 58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했던 말씀과는 너무 다른 반응이었다. 가족을 잘 돌보기는커녕 완전 무시한 것으로 오해를 살 정도의 반응이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동시에 명 설교가였던 켐벨 몰간(Campbell Morgan, 웨스트민스터 교회)은 그의 저서 마가복음 강해(The Gospel According to Mark)에서 이 부분을 예수께서 보라 나의 고난을 위하여 낳은 나의 형제들이며, 확신과 부드러운 동정의 마음을 지닌 나의 자매들이다. 그리고 모든 위로와 안식을 위해 태어나신 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하셨다고 강해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5)로 이어갔다.

 

혈연관계보다 무한히 높은 영적인 관계를 말씀하셨다. 데리러 온 가족보다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는 결코 혈연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패거리 문화가 판치는 시대지만 우리는 항상 거룩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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