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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마가복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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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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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수일 후 예수께서는 다시 가버나움의 한 집으로 가셨다. 베드로 장모의 집일 가능성이 높기는 해도 확실치는 않다. 가버나움은 남북으로 연결된 여행경로의 중요한 거점 도시, 로마군의 주둔지였고,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이 있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오가던 갈릴리의 중심지였다. 예수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문 앞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때 한 중풍병자(paralytic)를 침상에 누인 채 메고 온 네 사람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되자 지붕을 뜯어내고 병자의 침상을 집 안에 달아 내려 기어이 고침받게 한다. 당시 치유자 예수께서 선언하신 말씀이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take your mat and go home)였다. 이름모를 한 중풍병자가 고침 받은 사건이지만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돕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

 

  1) 작은 자야(son)

 

   갑자기 지붕이 뜯기고 침상이 내려질 때,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고, 참으로 희한한 만남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때 마가는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환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다. 여기서 ‘작은 자’는 헬라어로 ‘테크논’(τέκνον), ‘어린아이’라는 뜻이라 『NIV 성경』에서는 ‘son’이라고 번역했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실감 나게 ‘얘야!’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중풍병은 어린아이의 병이 아니라 성인병 아닌가? 그렇다면 30세밖에 되지 않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네 사람이 메고 온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는 3절 말씀도 이를 뒷받침한다. 많은 사람이 이 사람의 치유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낸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유대인들의 가옥은 돌로 벽을 쌓고, 흙이나 갈대, 종려나무 등으로 지붕을 덮었으나 누가에 의하면 기와지붕이었다(눅5:19). 아무리 쉽게 해체할 수 있는 구조였더라도 남의 집 지붕을 뜯는 것은 무리한 행동이다. 후폭풍이 거셀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강행했다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거나 존경받는 인물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목수 출신인 예수님이 ‘작은 자야’라고 부르셨다. 집안의 사람들이 다 당황했을 만도 한 이 호칭은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2)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your sins are forgiven)

 

   중풍병자는 죄 때문에 ‘작은 자’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죄인이라고 낙인찍히는 순간 작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그런 분들이 있었다. 죄 때문에 작은 자로 전락하는 것은 신분, 재산, 배경과 상관이 없다. 그만큼 죄가 문제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고쳐주고 가라고 하기보다 시급한 죄 문제부터 해결해주셨다.

 

   죄 사함! 이는 복음이자 은혜였다. 어떤 서기관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했지만 예수님은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침상에 매여 꼼작 못하며 지내는 것보다 죄에 매여 꼼작 못하는 것을 더 안타까워하신다. 그래서 “상을 가지고 가라”는 말씀보다 먼저 “죄 사함 받았다”고 하셨다.

  

 3)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We ha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드디어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중풍병자가 일어나 상을 가지고 나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amazement)!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도 그랬고(1:22), 귀신을 내쫓으셨을 때도 그랬다(1:27).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 기적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예수께서 믿기 힘든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상황을 돌파하는 네 사람의 믿음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방해거리가 많아도, 핑계거리가 많아도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기에 경험한 기적이었다. 우리도 문제의 해결자는 오직 예수이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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