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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 마가복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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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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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마가복음은 별명이 ‘소복음’(소처럼 열심히 섬긴 예수님)이지만 ‘곧 복음’이라 불리기도 한다. ‘곧’은 헬라어로 ‘유쑤스’, ‘즉시, 바로’란 뜻, 마가복음에 40회나 나온다. 1장에도 여러 번 사용됐다.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10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12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18절), “곧 부르시니”(20절),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21절)… 굳이 ‘곧’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곧’을 남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마가는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쉴 틈 없이 온 갈릴리를 부지런히 돌며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을 ‘긴박한 일’로 다뤘다. 그래서 ‘그리고’라는 뜻의 헬라어 ‘카이’를 무려 555회나 사용했다. 그만큼 긴박한 사역이었다는 것이다. 또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의 반응도 ‘즉각적’이었음을 부각시켰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브리핑도 없고, 제자들의 생각이나 처지, 가정형편 등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거저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18절)고만 했다.

예수님의 본문 속의 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부르심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혹시 핑계대고 머뭇거리는 때가 있다면 머뭇거림도 불순종임을 기억하고 긴박성과 즉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1) 필연적 만남

시간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로서 일을 하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다(16, 19절). 계획된 만남도, 예상했던 만남도 아니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만남이고, 우연인 듯한 필연적 만남이었다. 예수님이 보고 계시다가 그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부르신 것,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그들의 인생에 뚫고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우리의 예수님과의 만남도 우리가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사도 바울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3-),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창세 전의 선택이라고까지 고백했다. 아무나 부르고 아무나 택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나주고 불러주고 세워주심을 영광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2)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름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만 ‘만남’은 ‘따름’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만일 ‘따름’이 없는 ‘만남’이라면 그 ‘만남’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예컨대 맞선 본 처녀 총각이 차만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면 그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본문 속의 주인공 네 사람도 가버나움 길거리나 갈릴리 바닷가에서, 또 예루살렘 어귀에서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났다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따르지 않았다면 그 동안의 인연은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갔다”(18, 20절). ‘배와 그물’은 대를 이어 고기 잡는 어부들에게는 생계수단이자 인생 최후의 보루 아닌가? 물론 그들을 매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다. 함께 떠나 함께 먹고 함께 잤다. 여리고 성문 곁과 혼인 잔치가 열리던 가나에도,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과 나귀 타고 들어가시던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했다. 아예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결연한 자세였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3)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서면서 예수님은 그들 인생의 목적이 되셨다. 우리도 예수님을 목적으로 모시고 따라야 한다. 그 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무언가를 받으려는 자세보다 예수님 때문에 기뻐해야 가능할 것이다. 예수님은 선물 중의 선물, 최고의 선물, 그렇다면 초가삼간도 만족하고 구운 고구마 먹고 살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함이 기쁨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다. 지금까지는 ‘물고기’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영혼구원’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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