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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 마가복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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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침례를 받으심으로부터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침례 요한 이전의 침례는 이방인이 타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할 때 주는 의식이었고, 요한의 침례는 이방인들의 침례와는 질적으로 다르기는 해도 ‘회개의 침례’, 죄인들이 죄 씻음의 의미로 받는 문자 그대로 세례(洗禮) 정도의 의미였는데 죄 없는 예수께서 침례를 왜 받으셨을까?

마태복음서에서는 침례 요한이 예수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마3:14)라며 난감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이유를 마가복음에서는 침묵하며 그저 사건만 서술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며 그래서 요한도 허락했다’고 한다(3:15). 그렇다면 죄 씻음의 의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고, 본을 보이기 위해, 그리고 순종의 의미로 침례를 받으신 것이다.

침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 지냄,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며, 인간의 운명과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선언이자 거룩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인의 몸을 입고 죄인의 처지가 되신 예수님 편에서 행하신 코이노니아(Koinonia)였다. 이는 다미엔 신부(Damien, 1840-1889)가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Molokai) 섬의 나병환자들을 전도하려 해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자 “나병환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나병환자가 되어 ‘나병환자의 아버지’라 불리며 전설적인 나환자 선교사로 존경과 사랑을 받던 모습과 흡사하다면 이해가 될까?

마가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일어났던 현상들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하기 원했다. 마가복음서는 당시 일어났던 현상들을 세 가지로 증거했다.

1) 하늘이 갈라졌다

‘하늘이 갈라졌다’(10절)는 말의 원래의 의미는 ‘하늘이 찢어졌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던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할 때(막15:38)에도 쓰였다. 요한과 누가의 ‘열렸다’는 표현보다 생생한 묘사이다.

이는 단순한 어떤 이적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인자 위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요1:51)고 해석했고, 사도행전에서는 스데반이 순교 직전에 “하늘이 열리고 보좌 우편에 서계신 예수님을 봤다”(행7:56)고 했다. 하늘은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 곳, 마가는 침례 때 일어난 이 현상을 통해 예수께서 그 거룩한 곳을 볼 수 있게 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2)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께 임했다. 여기서 ‘비둘기 같이’가 어떤 단어를 수식하는지가 중요하다. 만일 ‘성령’을 수식한다면 ‘비둘기 같은 성령’이 되며 이 경우 예수께 임한 성령의 온유함과 평화가 강조되지만 ‘내려온다’는 동사를 수식한다면 ‘비둘기 같이 임했다’라는 의미가 되어 성령이 천천히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시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말씀이 된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시대가 열리게 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성령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 나타난 능력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신다. 당신께 임했던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임하는 성령의 시대를 선언하신 것이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타난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권능의 하나님, 선교의 원동력이 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훗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9:23)고 선언하신다,

3)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절),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이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내려와 예수님의 침례식에 동참하셨다면 하늘로부터 들려온 이 음성은 하나님께서 환영하며 동참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 코이노니아가 예수님의 침례를 통해 사람들 앞에 드러난 것을 부각시켰다.

이는 마치 시편 2:7의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에서 울려 퍼지던 칙령과 같은 소리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나는 너와 함께 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여기서 ‘영’은 ‘칙령’이라 번역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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