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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리의 수도사 방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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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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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호 목사

 

나는 방 애인 선생님을 ‘수도의 향기’라는 책에서 처음 접하였습니다. 최 두섭 목사님이 쓴 책입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방 애인 묘 앞에서 최 목사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그 묘지에 한번 가보고 싶다.’ 마침 전주 수양산 집회를 앞두고 배 기남 장로를 만나 부탁드렸습니다. 방 애인을 잘 알고 있는 최 창선 장로님을 찾아 대기하게 하였고 방애인 묘를 찾아 두었습니다.

1933년 세운 묘비가 약 90년 동안 비바람을 맞은 흔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묘지 앞에는 비문이 검은 돌에 가지런히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하나 관리하여 주는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배 기남 장로가 풀 베는 낫을 가지고 와서 묘지를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서문 밖 교회로 가 그의 생애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방 애인은 황해도 황주읍 벽성정에서 1909년 9월 26일 출생하여 전주에서 일하다 24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례는 온 전주가 합하여 드렸습니다.

방 애인은 호수돈을 졸업한 후, 그 해 1926년 4월 1일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사회생활에 첫 걸음 이었습니다.

처녀 선생으로서 전혀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향수는 물론 크림조차 얼굴에 바르지 않았습니다. 옷도 한 벌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값진 옷감이나 멋있는 옷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오직 기도, 오직 성경, 오직 전도, 오직 예수의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병든 자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슬픈 자에게 다가가 위로 자가 되었습니다. 거지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싸우는 자에게 다가가서 화평을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불평이 없는 온유한 선생님, 거만이 없는 겸손한 성도, 꾸밈이 없는 청빈의 시민, 그리고 항상 정직하고 누구나 사랑하는 사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산 속 깊은 곳의 수도사가 아니라 거리의 성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청빈과 거룩, 순복을 생명으로 여기는 수도사로서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작은 예수님 같았습니다. 성경적 생활의 모델 같았습니다. 산속에 숨어 있는 수녀가 아니라 학생 속에 성자요, 사회 속에 등불을 비추는 성녀요, 그늘진 곳에 서광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을 도피하는 숨은 선지자가 아니라 세상에 희망을 주는 신앙적 낙관의 성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방 애인은 미모를 지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유혹과 청혼이 몰려왔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청혼이 올 때마다 그는 여유 있게 웃으며 “시집가면 무엇 하나요?” 그래도 집요하게 요청이 오면 단호하게 “나는 나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24살의 아까운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방 애인이 죽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전주 전역에 퍼졌습니다.

고아, 창녀, 기생, 걸인들이 만장을 들고 장례식에 모여들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부르짖음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목메어 부르는 고아들의 부르짖음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갔습니다. 펄럭이는 만장이 1km 늘어섰습니다. 온 전주가 떠들썩하였습니다. 전주 전체를 울리는 장례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공동묘지에 안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속 수도사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성경대로,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친 토속 수도사들이 많습니다.

한 명 한 명 발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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