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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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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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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시기심(猜忌心), 이 말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남을 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 한자를 살펴보면 猜, 샘하다는 의미이고, 忌, 꺼리다, 질투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자리하고 있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경쟁심을 일으키게 하는 동기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선한 기능이 있다. 다만 선의로 컨트롤이 될 때에 한한 것이지만 분명히 사람은 적당한 경쟁심이 있을 때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굳이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마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경쟁들이 그런 것들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면서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기도 한 관계가 그렇다. 친구이면서 동시에 경쟁의 대상이 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누군가 반칙을 하면 그 관계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반칙을 능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기심이 악하게 작용하거나 지나치게 되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폭력과 화를 자초하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 이러한 경우는 상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자고, 적당히 노력하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까지도 자기가 해야 할 것에 대한 적당한 수고와 노력은 보람과 기쁨을 열매로 준다. 그러나 당연한 것조차 자기 안에서 컨트롤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화가된다.

사자성어(四字成語)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즉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화가 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자신의 다스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서 유학(儒學)에서는 중용이라는 말로 강조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결국 시기하는 마음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한 요소로서 선하게 작용될 때와 악하게 작용될 때 그 열매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인데, 때로는 인간 자신도 그에 대한 장담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알면서도 어리석은 결정을 하거나,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시행착오를 하면서 사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예배당 옥상에 있는 계사(鷄舍)에는 백봉이라는 품종의 닭 두 마리가 있다. 지난 주간부터 한 마리가 포란을 시작했다. 이틀이 지나면서 나머지 한 마리도 포란을 할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딱히 포란의 의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먹이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알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의깊게 살펴보니 포란하고 있는 닭으로부터 알 서너 개를 빼앗아 자신이 품고 앉아있는 것 아닌가. 하여 몇 번이나 내쫓고 알은 다시 먼저 품고 있는 닭의 품에 옮겨 넣어주었다. 내쫓으면 돌아다니면서 먹이활동도 하다가 내가 내려오면 다시 알을 빼앗아 자기가 품기를 반복했다.

일단 포란을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당연히 알도 낳지 않는다.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본능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산란은 중지된다. 그런데 시샘으로 포란을 시작한 놈은 알을 계속 낳으면서 옆에 있는 닭이 품고 있는 알을 빼앗아 자기가 품고 있다. 다음날 들춰보면 자기가 낳은 알도 있고, 옆에 있는 닭으로부터 빼앗은 알도 있다. 안되겠다 싶어서 녀석이 낳은 알은 무정란이니 꺼내고, 유정란을 넣어주기로 결정을 했다. 몸집이 작은 녀석이니 5개만 넣어주었다.

나흘째 되는 날이다. 넣어준 알을 품은 채 요지부동이다. 그날부터 산란도 멈췄다. 옆에 있는 녀석이 포란을 하자 시기하는 마음으로 알을 빼앗아 품기를 반복하더니 호르몬 변화가 일어났는가 결국 포란을 시작했다. 문제는 더위다. 매일 밤 열대야 현상이 계속될 만큼 더운데 두 마리가 함께 둥지에서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먹이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양만 먹는다. 모이통도, 물통도 건드린 흔적이 없다.

이 더위에 시기심 때문에 포란의 고통을 자초한 녀석은 이제부터 3주간의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을 선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기할 것이 따로 있지 포란을 시기하다가 삼복더위에 고역을 치르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인간의 못난 모습도 보게 된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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