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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쓴물(출 15: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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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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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 목사

 

홍해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건넌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의 역사인지,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노래합니다. 여자의 목소리를 금지시켰던 당시의 풍습을 볼 때, 여인들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축제는 백성들의 축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 뒤에는 안락한 시간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라’를 만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 쓴물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모습을 보여줍니다.

홍해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감격하여 축제의 노래를 부른 뒤, 수르 광야에서 3일 길을 걸었습니다. 수르는 ‘벽, 방어벽’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벽이 되어 보호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서 물이 보였습니다. 기쁘게 달려간 사람들의 입에서 “쓰다!”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라’는 ‘쓰다, 고통스럽다. 괴롭다. 슬프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물이 없었으면 좋을 것 같을 만큼 고통이 더 컸습니다. 3일전만 해도 감당 못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오늘날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도 ‘마라’의 문제를 만납니다. 웃음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시대로 살아도 되는 일이 없고, 어려움만 닥쳐오고 큰 문제를 넘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쓴 것을 모르는 혀는 단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쓴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은혜가 단 줄을 알게 되고, 세상이 허무한 줄 알아야 말씀이 달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의지하게 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모든 일에 피하거나 도망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고 견디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 한 사람 모세를 봅니다.

살인죄, 광야, 10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을 체험한 모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전진하는 것만이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결코 마라에서 끝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통에 직면할수록 주께 가까이 나아가며 연약해진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모두가 아우성 칠 때 부르짖어 기도했고, 죽일 듯 달려오는 백성들에게 변명하거나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길은 부르짖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고, 만사를 변화시키고, 지금도 기적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나무를 가리켜 모세에게 물에 던지게 하심으로 달게 하셨습니다. 메튜 헨리는 ‘십자가는 모든 고통을 주는 쓴 물을 달게 하는 나무’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심령에 찾아오시고 내 가정에 찾아오실 때,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먹은 후에 방종한 생활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시험한다.’는 것은 ‘계속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말씀에 순종하는가?’ 그 여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는 깨닫고 회개시켜서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짐을 시키십니다.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애굽 사람들에게 내렸던 재앙을 받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라파’라는 뜻은 ‘온전하게 꿰매어 고치다.’입니다. 하나님은 ‘내 영혼도 내 병도 내 성격도 내 습관도 환경도 고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 행군하여 ‘엘림’이라는 곳에 이렀는데, 시원하게 솟아나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주가 우거져있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림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쉼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조금만 참고 기다렸더라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죄를 범치 않고도 축복의 오아시스에서 실컷 물을 마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엘림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저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는 순례자들임을 기억하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계속해서 전진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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