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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위해 우리를 불러 세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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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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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2011년 중국에서 어떤 여성 운전자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 고개를 넘고 있는데 승객가운데 불량배 두 명이 여기사에게 달려들어 성희롱을 하였다. 승객들은 모두 못 본 척 하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그들을 만류하다가 오히려 심하게 얻어맞았다. 더 당당해진 불량배들은 급기야 정상에서 버스를 세우더니 여성 기사를 숲속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한참 뒤 여성 기사를 앞세우고 돌아왔다.

그런데 차에 오른 여성기사가 불량배를 제지했던 중년남자에게로 가서 큰 소리를 지르며 빨리 차에서 내리라고 윽박질렀다. 중년 남자는 황당해하며 “그래도 나는 당신을 도우려고 했는데...왜 나에게 이러는 것이오?” 하자 기사는 더욱 소리를 지르며 “승객 여러분, 이 사람이 내리지 않으면 이 차는 절대 출발하지 않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 중년남자가 안 내리고 버티니까 조급해진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 내리고 그의 짐도 차 밖으로 던져버렸다. 중년남자는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버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기사는 내리막길에서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며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와 또 기사와 승객들에게 당한 행패를 생각하며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던 중년남자는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교통경찰관이 말하기를 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 승객 전원이 사망한 대형 사고라고 말했다. 멀리 산 밑을 내려다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다. 그 여성운전자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유일하게 불량배들의 악행을 제지했던, 그 중년남자를 살리려고 막무가내 식으로 끌어 내침을 당하게 했고 불량배와 비겁하고 야비했던 승객들 모두를 지옥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이다.

‘버스 44’라는 영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먼저 여자기사는 누구인가? 그녀는 미약한 사람이었으나 그렇다고 봉변을 당할 때 그 중년남자 외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여기사는 마치 구한말 민비라고나 할까? 무능했던 고종임금이라 할까? 아니 약소국이었던 대한제국의 운명이었다고 할까? 당시 고종은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 간절히 기대했다. 일본은 물론 청나라, 러시아 그 어떤 강대국도 약한 조선을 도와주지 않았다. 명분과 야욕뿐이었다.

그렇게 급박한 현상은 지금 오늘 조국의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이지만 트럼프의 정치마인드를 어디까지 신뢰할지 의문이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본, 큰소리치는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구한말과 똑같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두 번째 승객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여기사의 봉변을 하나같이 외면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버스 안에서 그래도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5천만 동포들이여!

우리들은 불량배들의 행패를 방조했던 승객들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2차대전시 프랑스가 독일에게 정복당했으나 레지스탕스 활동은 계속되었다. 프랑스가 해방 되었을 때 독일에 협조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죄다.”

그러나 재판장은 그에게 ‘조국이 일시에 무너지고 수많은 젊은이와 아녀자가 무참하게 죽어 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큰 죄인 것이다.’ 엄중하게 선고했다.

지금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등불이 꺼져가고, 경제가 무너져가며, 나라 밖으로는 동해와 영공이 혼란하며 외교적 공항상태인데, 이 민족의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여!

언제까지 방관자로 주저앉아 있기만 할 것인가? 왜 초조하게 바라보고만 있는가? 이 때야말로 함께 모여 밤을 새며 나라와 민족과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하지 않겠는가? 지금 함께 모여 기도하지 않으면 과연 어느 날 어느 때 기도하며 금식하려는가?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가가 있으며 또한 나라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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