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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여행 - 이희우 목사와 함께 엘리야를 따라가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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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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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엘리야와 아합의 싸움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의 영적 대결이었다. 열왕기서의 기록자는 그 싸움을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으로 다뤘다. 그런데 무대가 갑자기 한 개인으로 축소된다. ‘이스르엘(Jezreel) 사람 나봇’이라는 한 인물의 일상사로 무대가 좁혀진 것이다.

이스르엘(예루살렘 북쪽 약 90㎞ 지점)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씨를 뿌리실 것”(God will sow)이라는 뜻이 있는 고대 팔레스타인의 도시, 단순한 개인의 일상사가 아니다. 큰 틀로 보면 바알체제의 영향을 마치 영화나 소설에서 한 개인의 인생사를 조명함으로써 거시적 단위의 전쟁이나 어떤 정책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듯이 서술했다. 단순한 죄악상의 고발을 넘어 하나님의 역사를 움직이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봇에게 행한 죄악 때문에 아합 왕조가 심판을 받는다는 것, 전개과정을 보며 욕망대로 사는 삶 등 삶의 자세를 돌아보기 바란다.

 

1) 나할라 신앙: 청지기 자세

사건의 발단은 아합이 나봇의 땅을 욕심내면서 시작되었다. 아합의 거처가 사마리아였지만 약 37㎞ 거리인 이스르엘 쪽에도 여름 별궁 같은 왕궁이 있었는데 왕궁 한 쪽에 붙은 나봇의 포도원이 왕궁의 경관을 해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합은 나봇에게 이 땅을 팔라고 했고, 팔면 다른 곳의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거나 아니면 후한 값을 쳐 주겠다고 제안했다(2절).

조건이 괜찮았는데도 나봇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3절) ‘유산’은 히브리어로 ‘나할라’, 이는 일반적으로는 “재산, 소유, 기업”이라는 뜻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출애굽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고 그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었고 자손 대대로 상속했다.

나봇은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레25:23)이라는 말씀에 근거한 나할라 신앙, 청지기의 자세로 거절한 것이다. 기름진 땅이나 돈보다 하나님의 땅이라는 생각과 자신은 그저 “거류민(또는 소작인)이요 동거하는 자”, 즉 관리자일 뿐이라는 신앙의 자세였다.

 

2) 공동체의 파괴: 거짓과 살인

비록 아합은 악인이었지만 나할라 신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4절), 왕궁을 멋지게 꾸미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밥맛을 잃고 아예 침상에 드러누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던가? 더 멋진 삶에 대한 하찮은 욕망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모습을 보며 이세벨이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답답해하며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7절)라고 했다. 이세벨은 왕이라면 권력을 행사해서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바알 체제가 가지고 있는 힘의 논리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교단 내에서마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세벨은 나봇의 땅을 빼앗기 위한 계획을 꾸미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썼다.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음모에 한 동네 사람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세벨의 음모대로 마을에 금식이 선포되고 그 주관자로 나봇을 가장 높은 자리에 세우고, 거짓으로 불량자 두 사람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것으로 모함하였다.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의 증언은 절대적 증거가 되었다. 금식 기간에 하나님을 저주하였다면 그로 인해 공동체가 저주를 받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집안의 남자 아들들까지 다 죽였다(왕하9:26). 결국 아합 왕은 손쉽게 그 땅을 차지했다. 나할라 신앙이 무너지고 땅들은 가진 자들의 소유가 되기 시작했다. 거짓과 살인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만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 후손으로 이어진 재앙

바알 우상을 숭배하며 지은 죄도 문제였지만 나봇의 포도원 강탈사건은 아합과 그 가문에 대한 심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19절), 나봇은 이스르엘 평원에 살던 평범한 농부였지만 거저 작은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리를 듣고 역사의 방향을 전환시키셨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는 말씀대로 엘리야는 아합의 가문에 하나님의 재앙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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