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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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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지난봄은 가뭄이 길었다. 도시에서 가뭄을 걱정하는 것은 좀 낯이 설지만 강수량도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필요한 시기에는 내려주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5월에 모내기는 할 수 있었을지 모를 정도로 강수량이 적었던 것 같다. 개울은 그만두고 도심의 아스팔트에 빗물이 흘러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봄 가뭄이 계속되면서 옥상의 잔디밭은 바싹 말라죽어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작년에는 여름가뭄과 혹독한 더위로 잔디가 죽어갔었는데, 금년에는 봄부터 잔디들이 말라갔다. 작년엔 잔디가 완전히 마른 다음에 원상회복까지 기간이 한 달이나 걸렸다.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죽은 잔디밭에 매일 물을 주어야 했다. 주는 물의 양도 상당히 많았다. 조금씩 주어서는 그 물이 뿌리까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충분한 물을 주기를 반복한 결과 한 달쯤 지난 후에야 겨우 다시 푸른 잔디밭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금년에는 잔디가 마르는 상태까지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완전히 마른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조금씩 물을 주면서, 특별히 마른 듯한 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집중해서 물을 주었다. 작년의 경험을 되살려서 매일 물주기를 쉬지 않은 결과 가뭄이 길어져도 옥상의 잔디밭에 푸르름을 지켜냈다. 누가 올라가든 푸른 잔디밭이 반기는 옥상에서의 쉼을 얻을 수 있을 만큼 푸르름이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잔디를 심은 토심(土深)이 얕기 때문에 보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따라서 자주 물을 충분히 주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물주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바쁠 때는 이걸 왜 시작해서 이렇게 힘이 드는가 하는 자조적(自嘲的)인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는 잔디를 살려야 예배당의 냉난방비가 절약되고, 실내의 온도와 공기의 느낌이 훨씬 상쾌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든지 옥상에 잠시 올라갔을 때 느끼게 되는 기쁨은 덤으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수고를 통해서 매우 큰 실익을 얻을 수 있다면 시간과 수고를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도심에서 푸른 잔디밭을 두 발로 밟으면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잔디가 있는 공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마저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에 녹록하지 않다. 그런데 같은 건물 옥상에 잔디밭이 있으니 수고로이 멀리가지 않아도 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도 아닌, 다만 계단 몇 개만 올라가는 수고를 하면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일석이조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시간과 수고를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잔디를 잘 가꾸어야 한다. 하루만이라도 물을 주지 않는다면 잔디밭은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력이 아주 강한 것이 잔디지만, 그렇다고 토심이 얕은 옥상에서 잔디의 생명력만 믿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고 해도 임계점을 넘으면 살 수 없다. 그 한계에 이르기 전에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공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옥상에 물을 공급하는 일이란 오직 비가 오는 것 외에는 사람이 수고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물을 공급하는 수고를 해야만 잔디의 생명이 담보될 수 있다. 사람이 잔디밭이 주는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잔디를 지켜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비에 대한 고마움이다. 평소에는 비가 와서 걱정, 안 와서 걱정이었는데, 옥상을 관리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비에 대한 일방적인 고마움이 크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물을 주더라도 비가 조금 내려주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식물에 끼치는 영양에도 그렇다. 대기 중에 있는 다양한 성분들이 빗물에 섞여서 식물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일기예보에 신경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농사할 일이 없으니 자신이 활동하는 일과 관련해서나 예보를 챙겼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기예보를 챙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옥상의 잔디밭 때문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매일 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단지 물을 주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식물들에게도 빗물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돗물도 아낄 수 있는 것이 실제적인 이익이기도 하다.

어떻든 비를 기다리고, 비에 담긴 은혜를 확인하게 된다. 가뭄이 긴 만큼 비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느껴진다. 비가 은혜인 것을 고백하게 된다. 옥상에 잔디밭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물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으리라. 물주기하는 덕분에 비가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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