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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여행 - 이희우 목사와 함께 엘리야를 따라가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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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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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러 호렙산까지 40일을 밤낮으로 걸어왔다. 호렙산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신 산으로 모두 15차례 기록된 시내산과 같은 산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지만 만일 시내산과 같은 산이라면 삿 5:5, 시 68:8, 68:17절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산’이다. 출4:27, 18:5, 24:13절에서도 그랬지만 왕상 19:8절에서도 ‘하나님의 산’이라고 한 곳,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나 신을 벗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학대로부터 구해내라는 사명을 받은 산이다(출3:1-10).

하나님은 이 역사적인 산에서 자기의 사명은 이제 끝났다고 자포자기하고 있던 엘리야에게 과거에 모세에게 하신 것처럼 특별히 당신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사명감을 되찾게 해주셨다.

1) 동굴에서 나오라

로뎀나무에서 하나님께서 충분히 재우고 먹을 것도 주셔서 육체는 회복되었으나 엘리야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는 하나님의 질문에 10절과 14절 두 번에 걸쳐 동일하게 대답하는 엘리야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자신의 실패와 외로움과 위기를 토로하는 엘리야는 여전히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자청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두 번이나 ‘나만 남았거늘’(only one left)을 말할 만큼 진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호렙산까지는 40일이 걸릴 정도로 멀지 않아 지금의 시내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서 역사적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40일이라는 숫자는 상징성이 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에서 머물렀던 그 40일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40일을 걷고도 엘리야는 분노와 희망이 교차했던 것 같다. 결국 동굴에 유한다(9절). 여전히 자기 폐색증, 동굴심리의 포로로 숨기에 급급했다는 뜻이다. 굴은 갇힌 곳, 답답한 곳, 엘리야의 마음을 상징한다.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서라”(11절)고 해도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불의 모습으로, 강한 바람으로, 지진으로 지나가셔도 나가지 않았다. 세미한 음성(gentle whisper)으로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나갔다(13절).

2) 가서 기름 부어라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서 왔는지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엘리야에게 물었던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질문은 모든 사명자들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왜 무기력하게 목적의식 없이 주저앉아 있느냐고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엘리야 앞을 처음에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나가셨다. 홍해를 가르던 바람, 우레와 번개를 몰고 와 비를 뿌리던 그 바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다. 다음은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있었다. 시내산에서 강림하며 온 산을 뒤흔드셨던 하나님 임재의 지진, 때로 이스라엘을 심판하던 지진이었지만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시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불이 지나갔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던 유황불, 시내산 강림시 가장 특징적인 모습의 불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세미한 음성, 다정한 속삭임으로 역사하셨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며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선지자를 삼으라”(15-16절)는 세 가지 지시를 내리셨다.

3) 칠천 명의 의인들이 남아있다

장군이었던 하사엘과 예후를 왕으로 세운다는 것은 곧 쿠데타를 도모하는 것이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사역이 그치지 않고 지속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동지들을 칠천이나 남겨두었다고 하셨다(18절).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는 먼저 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굴은 자기라는 갇힌 세계, 내 경험, 내 지식, 내 생각, 그 곳은 편안할 수는 있지만 자유와 풍요, 발전이 없다. 그리고 큰 능력의 역사만 구하지 말고 세미한 음성에도 안테나를 맞춰야 한다. 십자가도 무능력한 것이었으나 구원의 길을 연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보다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Stop focusing on what's lost, Start focusing on what's left). 그래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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